인류세, 생태환경의 시각에서 바라보자[Monday DBR]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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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와 생태계 파괴가 심각해지는 시대를 맞아 어떻게 하면 지구환경의 한계 내에 머물면서 우리의 생활양식을 유지할 수 있을지가 인류 최대의 과제가 되고 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인류가 현재 수준의 화석연료 사용을 지속할 경우 21세기 말 지구 평균 기온이 금세기 초보다 4∼5도가량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구환경이 과거와 완전히 달라지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의 시대를 ‘인류세(人類世·Anthropocene)’로 규정하려는 주장이 차츰 많은 이의 동의를 얻고 있다. 인류세는 ‘인류로 인해 빚어진 시대’라는 의미로, 최근 급격하게 변화하는 지구환경에 적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담긴 용어이기도 하다.

기후위기 극복이라는 난제를 풀려면 인류가 왜 이런 지점에 와 있는지부터 근본적으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과거와 현재의 대화’를 시도하는 역사학의 역할이 중요하다. 특히 역사학에서도 기후문제와 관련한 분야로 생태환경사(ecological and environmental history)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19세기 중후반 서해에서는 조선과 청나라 어선 사이에 분쟁이 자주 일어났고, 이는 양국 간 외교 마찰로 이어졌다. 기존의 역사 연구들은 서해안의 어장을 둘러싼 어업 분쟁이 발생한 사실을 평면적으로 언급할 따름이었다. 그런데 생태환경사의 시각에서 이를 바라보면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다.

19세기 조선과 청나라의 어업 분쟁에는 기후변동과 청어(靑魚)라는 변수가 작용하고 있었다. 현재 한국의 연해에서는 잘 안 잡히는 청어가 지금보다 평균 기온이 약 2도는 낮았던 소빙기(小氷期·대략 1400∼1850년)에는 동·서·남해 전역에서 흔하게 잡히는 물고기였다. 이 청어가 16세기 후반부터는 중국의 요동과 산동 지역에도 출현해 중국인들의 단백질 공급원이 됐다. 그런데 1850년 무렵이 되자 중국 연해에서 청어가 점차 사라졌고, 청나라 어선들은 청어 떼를 쫓아 조선의 서해안으로 몰려들어 불법 어업을 펼쳤다. 이후 1880년대 들어서는 서해안에서도 청어가 점차 사라졌고, 이 과정에서 청국 어선들이 조선 어민들의 어장을 약탈하는 사건이 빈번히 발생했다.

당시 청어가 사라진 배경에는 기후변동이 있었다. 19세기 후반 기후가 온난해지면서 청어가 점차 동아시아 해역에서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 것이다. 소빙기가 몰고 온 ‘청어 풍년’을 지구온난화가 거둬들이고, 이는 인간의 활동에도 영향을 끼쳤다.

이처럼 급격한 기후변동은 인간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지만, 인간이 이에 어떻게 대응하는지가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 소빙기 중에서도 가장 추위가 두드러진 17세기는 세계 여러 지역에서 격변과 위기의 시기이기도 했지만, 청나라 강희제(1661∼1772년 재위)는 기근에 대응해 부역과 조세를 감면하고 다양한 구휼정책을 실시해 성군으로 칭송받기도 했다. 한편 소빙기의 상대적으로 추운 날씨는 난방의 필요성을 증대시켜 나무 장작의 수요를 촉진했다. 목재의 수요와 가격 상승은 다른 연료 자원을 찾게 하는 요인이 됐는데, 석탄이 바로 그 대체재로 떠올랐다. 이런 석탄 수요의 증대는 산업혁명의 배경이 됐다.

소빙기의 기후변동이 인간에게 미친 영향과 그에 대한 인류의 대응은 21세기가 맞이한 기후위기의 현실에 다음과 같은 교훈을 준다. 기후는 인간의 삶에 예나 지금이나 큰 변수라는 점, 더 나아가 인간이 기후위기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재앙을 피할 수도,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수도 있다는 점을 말이다.

기후재앙에서 벗어나 잘 살아남으려면 우리는 스스로가 가진 막강한 힘을 현명하게 사용해야 한다. 그러려면 일상생활에서부터 관점을 바꿈으로써 사회경제체제의 구조적인 전환을 추구해야 한다. 여전히 많은 이는 북극곰을 불쌍히 여기면서도 자기 집의 전기요금이 올라가기를 바라지 않는다. 전기 사용으로 온실가스가 배출되고, 그로 인해 북극 해빙이 녹아 북극곰의 서식환경이 악화하는 상황을 망각한다. 기후변화로 인해 몰디브가 해수면 아래로 잠길 위기에 놓였기 때문에 몰디브로 하루빨리 여행을 다녀와야 한다는 사고방식도 만연해 있다.

물질만능주의,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바탕으로 인간과 여타 생명체의 공존을 고려해 약간의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은 우리 모두의 과제이다. 소빙기의 위기에 적응한 인간 군상이 오늘날의 기후위기 극복에 작은 교훈을 던져줬듯이 생태환경사 관점에서 역사와 현재를 돌아보는 일 또한 변화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

이 글은 DBR(동아비즈니스리뷰) 316호(2021년 3월 1일자)에 실린 ‘인류세 헤쳐 나가려면 구조적 전환 필요’의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고태우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kotwmaha@gmail.com
#인류세#생태환경#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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