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무늬만 청정’에 지원… 길 잃은 수소 정책

  • 동아일보

탄소 감축 효과 불분명한
석탄-암모니아 혼소 발전 대신
철강 산업 경쟁력 강화 지원해야

정부가 청정 수소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도입한 ‘청정수소발전의무화제도(CHPS)’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2024년 첫 입찰에서 유일하게 낙찰된 사업이 탄소 감축 효과가 불분명한 ‘석탄-암모니아 혼소 발전(삼척그린파워 1호기)’이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정부가 정작 수소 전환이 시급한 산업 경쟁력 강화를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 12월 2호(431호)에 실린 원고를 요약해 소개한다.

정부는 발전사들이 의무적으로 수소를 사용하게 하면서 초기 시장을 열고 설비 투자를 유도하겠다는 취지로 CHPS를 도입했다. 그런데 첫 낙찰자인 삼척그린파워는 진정한 의미의 청정 수소 발전과는 거리가 멀다. 삼척그린파워는 석탄에 암모니아를 섞어 태워 석탄 사용량을 20% 줄인다고 하지만 연료인 암모니아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생산해 운송해 오는 전 과정(LCA)을 고려하면 실질적인 탄소 배출량은 줄어들지 않는다.

비용 효율성은 더 심각한 문제다. 삼척그린파워의 발전 단가는 kWh당 약 450원으로, 2025년 예상 재생에너지 가격(170∼190원)의 2∼3배에 달한다. 15년 장기 계약을 감안하면 단 한 곳의 석탄발전소 배출량을 일부 줄이는 데 약 5조 원의 재정이 투입되는 셈이다. 감축 효율이 낮은 기술에 막대한 예산이 낭비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삼척그린파워가 선정된 것은 과거 정부 보조금을 받은 이력 덕분에 상대적으로 낮은 입찰가를 제시할 수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지원이 발전소에 집중되는 사이 탄소 규제의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 철강 산업은 정책의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있다. 국내 온실가스 배출의 15%를 차지하는 철강업계는 생존을 위해 수소환원제철 등 공정 전환이 시급하지만 이에 대한 구체적인 재정 지원이 없는 실정이다. 내수 침체와 중국 등 해외 저가 제품의 공세 속에서 한국 철강이 살아남으려면 전기차, 건설, 재생에너지 등 미래 산업에 필수적인 ‘저탄소 고부가가치 철강’ 제품으로의 전환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해외 의존도를 낮추고 국내 재생에너지 기반의 수소 생산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특히 수소 수요가 큰 철강 부문에 대해 수전해 설비 투자 지원, 재생에너지 직접 연계, 세제 혜택 등 실질적인 정책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한국이 발전 중심 정책에 머물러 있는 동안 해외 주요국은 수소 정책의 핵심을 ‘산업 경쟁력’에 두고 있다. 일례로 미국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해 청정수소 생산에 세액공제를 제공하고, 유럽연합(EU)은 ‘수소은행’을 통해 산업용 프로젝트에 직접 자금을 댄다. 수소경제가 지속가능한 성장을 하려면 감축 효율이 낮은 혼소 기술에 대한 지원을 멈추고 그 재원을 산업 부문의 공정 전환과 국내 그린수소 인프라 구축으로 과감히 돌려야 한다.

#탄소 감축#산업 경쟁력#청정수소발전의무화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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