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내내 값 오르더니… 봄 이사철 앞 ‘전세 실종’

  • 동아일보

길음뉴타운 1만2000채 중 24건뿐
실거주 강화 겹쳐 ‘품귀 현상’ 가속

서울 아파트 전세 가격이 1년여간 연속해서 오른 가운데 봄 이사철을 앞두고 전세 매물 자체를 찾기 어려운 ‘품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전셋값이 올라 기존 세입자들이 이사를 가지 않는 상황에서 지난해 10·15 부동산 대책으로 서울 전역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되면서 실거주 의무가 부여돼 전세 매물이 줄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4일 부동산 플랫폼 ‘아파트실거래가’에 따르면 이날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2만1674건으로 지난해 2월 4일(2만7424건) 대비 21.0% 감소했다. 성북구(―88.3%) 관악구(―72.0%) 등 출퇴근이 편하고 주변 지역보다 저렴한 곳의 매물 감소 폭이 컸다. 성북구의 대표 주거지역인 길음뉴타운의 1000채 이상 아파트 8개 단지(1만2631채) 중 네이버부동산에 올라온 전세 매물은 이날 기준 24건(0.2%)뿐이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세 가격은 지난해 2월 첫째 주 상승 전환한 뒤 51주 연속 상승세다.

씨 마르는 전세… 성북 1년새 88%-관악 72%-강동 64% 줄어
집주인들, 실거주 의무에 본인 입주
전세 계약중 절반 가까이 재계약
가격 올라 수도권 외곽-월세 눈돌려
전문가 “도심 공금-임대주택 늘려야”
4일 오후 서울 마포구 도화동의 한 부동산중개사무소에 거래가 완료된 전세·매매 물건에 ‘X’자가 표시돼 있다. 봄 이사철을 앞두고 서울 강북권 위주로 아파트 전세 매물 ‘품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전셋값 상승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실거주 강화 정책이 시행되면서 전셋집 구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4일 오후 서울 마포구 도화동의 한 부동산중개사무소에 거래가 완료된 전세·매매 물건에 ‘X’자가 표시돼 있다. 봄 이사철을 앞두고 서울 강북권 위주로 아파트 전세 매물 ‘품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전셋값 상승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실거주 강화 정책이 시행되면서 전셋집 구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2일 서울 성북구 길음동 길음뉴타운을 가로지르는 삼양로. 이곳은 1000채 이상 아파트 단지 8곳을 관통하는 도로지만 일대 부동산 중개사무소 외벽 매물 광고판에는 전세 매물 홍보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8개 단지 중에서도 규모가 큰 편인 길음동부센트레빌은 1377채 규모지만 이날 기준 전세 매물은 아예 없고 월세는 1건뿐이었다. 한 공인중개사는 “빌라는 전세사기 우려가 여전히 크다 보니 아파트 전세를 찾는 이가 많은데 집주인들이 전세를 내놓지 않는다”며 “계약기간이 끝난 세입자 중에는 다산·김포 등으로 이사하는 경우도 나온다”고 설명했다.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이 51주 연속 상승하고, 전세 매물도 강북권을 중심으로 ‘품귀 현상’을 빚으면서 새 전셋집을 찾아야 하는 신혼부부나 사회초년생 등의 주거비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직장과 거리가 먼 수도권 외곽으로 이사를 가거나, 오피스텔 등에서 월세를 부담하며 거주해야 하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 “전세 올라 수도권 외곽-오피스텔 월세로”

4일 부동산 플랫폼 아파트실거래가(아실) 기준 서울 성북구의 전세 매물은 137건에 그친다. 1년 전 1170건과 비교하면 90% 가까이 줄었다. 수천 채 규모 대단지 아파트가 많은 강동구도 이날 기준 매물이 1099건으로 1년 전(3091건)보다 64.4% 감소했다.

이처럼 전세가 씨가 마르면서 기존 집에서 그대로 거주하려는 세입자도 늘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아파트 전세 계약 13만8419건 중 절반에 가까운 6만3149건(45.6%)이 기존 계약을 연장하는 재계약이었다. 전세 갱신 거래 중 계약갱신요구권을 사용한 거래는 3만5344건(56.0%)으로 전년(34.4%)보다 15.6%포인트 증가했다. 갱신권을 사용하면 전월셋값 인상률이 5%로 제한된다.

갱신 계약과 신규 계약 간에 수억 원씩 차이가 나는 ‘이중 가격’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서울 강동구 고덕동 고덕그라시움 전용 59㎡(13층)는 지난달 17일 기존 전세 계약을 6억3000만 원에 갱신했다. 같은 날 같은 평형 2층 매물은 이보다 1억2000만 원 높은 7억5000만 원에 신규 전세 계약을 맺었다.

선택지가 없는 신혼부부나 사회초년생들은 수도권 외곽이나 월세살이로 눈을 돌리고 있다. 최근 결혼한 송모 씨(31)는 경기 안양시의 보증금 1000만 원, 월세 80만 원짜리 준공 30년 초과 소형 아파트에 신혼 살림을 차렸다. 송 씨는 “아이를 낳으면 생활비가 늘어나 더 외곽으로 밀려날까 걱정된다”고 했다.

● “공급 늘릴 방법 찾아야”

전셋값 상승 추세가 이어지고 전세매물이 나오지 않는 배경으로 이재명 정부에서 추진하는 ‘실거주 강화’ 정책 기조가 거론된다. 10·15 부동산대책으로는 서울 전역과 경기 남부 12곳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됐다. 이 지역에서 아파트를 매수하려면 취득 후 즉시 2년간 실거주해야 한다. 집주인들이 새로 집을 매수하더라도 세를 놓는 대신 본인이 입주하기 때문에 주거 여건이 좋은 선호 지역일수록 전세 매물은 줄어들고 있다. 지난해 6·27 대출규제로 수도권과 규제지역에서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대출이 금지됨에 따라 아파트를 분양받은 뒤 세입자를 들여 보증금으로 잔금을 치르는 방식이 불가능해지면서 신축 아파트 전세가 더 귀해졌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기존 세입자는 이사를 가지 않으려 하고, 집주인도 실거주 의무 때문에 집을 전세로 내놓지 않는다”며 “전세 매물이 나오도록 유도하고 도심 공급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규현 한양사이버대 건축도시공학과 교수(전 한국주택학회장)는 “다주택자가 집을 팔아도 그 가격에 집을 살 수 없는 계층이 존재한다”며 “다양한 임대주택을 공급해 ‘주거사다리’가 기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울 아파트#전세 매물#품귀 현상#부동산 대책#토지거래허가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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