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현종의 특별함, ML 스카우트는 알아봤다[광화문에서/이헌재]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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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 스포츠부 차장
이헌재 스포츠부 차장
야구 스카우트는 선수를 뽑는 일을 한다. 일 년 내내 경기장과 훈련장을 돌며 선수들을 관찰한다. 치고, 던지고, 달리는 건 기본이다. 생활 태도나 동료들과의 관계 등도 지켜본다. 이렇게 20년쯤 보내면 경지에 오르게 된다. ‘척’ 보면 알게 되는 것이다.

김태민 스카우트(50)도 그중 한 명이다. 1990년대 중반 LG에서 선수로 뛰었던 그는 2000년부터 메이저리그 미네소타의 아시아 담당 스카우트로 일하고 있다.

수만 명의 선수를 만난 그에겐 특별한 선수가 있다. 편한 국내 생활을 뿌리치고 신인으로 메이저리그에 도전하는 왼손 투수 양현종(33·전 KIA)이다.

양현종이 광주동성고 3학년이던 2006년 어느 날. 면담 자리를 마련한 김 스카우트는 이렇게 물었다. “메이저리그 갈래?” 이런 질문을 받은 선수 중 열에 아홉은 이렇게 답하기 마련이다. “예, 자신 있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혈기 왕성한 청소년 선수가 실력보다 의욕이 앞서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양현종은 달랐다. 잠시 생각하던 그는 “전 아직 많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열심히 준비해서 나중에 도전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김 스카우트는 “너무 놀랐다. 스스로에게 그렇게 솔직한 선수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거의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당시 그는 양현종에게 “넌 언젠가 크게 성공할 것”이라는 덕담을 건넸다.

결과적으로 양현종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KBO리그 초반 2년간 양현종은 단순히 공만 빠른 선수였다. 단 1승을 거두는 동안 7패를 당했다. 2010년 일약 16승을 올렸지만 그 후 2년 연속 평균자책점이 5점을 넘을 정도로 기복이 심했다.

양현종이 우리가 아는 안경 쓴 왼손 에이스로 자리 잡은 건 입단 7년 차이던 2013년 즈음이다. 2017년에는 20승을 올리며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도 이끌었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준비, 노력, 눈물이 그 바탕에 있었다.

그리고 생애 두 번째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이번 스토브리그에서 양현종은 메이저리그 도전을 선언했다. 좋은 조건을 바라지 않았다. 경쟁할 수 있는 팀을 골랐다. 그리고 텍사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했다. 김 스카우트는 “웬 마이너리그 계약이냐고 할 수 있지만 그게 바로 양현종이다. 후회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는 “많은 한국 선수들이 계약금을 보고 미국에 가려 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미국 현지에서 최고가 되는 것이다. 미국에서 성공하면 몇 배의 부와 명예가 따라온다”고 덧붙였다.

양현종의 미국 진출로 KBO리그를 대표하는 왼손 투수 3인방이던 류현진(34·토론토), 김광현(33·세인트루이스), 양현종이 모두 미국에서 뛰게 된다. 류현진은 이미 메이저리그에서도 에이스로 자리 잡았고, 김광현도 신인이던 지난해 선발 자리를 꿰찼다. 양현종에게는 어떤 미래가 열려 있을까. 김 스카우트는 이렇게 말했다.

“양현종은 원래 슬로 스타터입니다. KBO리그에서도 다른 두 선수에 비해 늦게 꽃을 피웠죠. 메이저리그도 가장 늦게 진출합니다. 하지만 야구를, 인생을 누가 아나요. 특별했던 그가 후회 없이 자기의 공을 던지길 응원할 뿐입니다.”

이헌재 스포츠부 차장 uni@donga.com
#양현종#야구 스카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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