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감 영하25도 거리에 내복차림 5세 여아 “도와주세요”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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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혼자 남겨둔채 외출
잠시 나왔다 문잠겨 못들어가
지나던 주민이 외투 덮어준뒤 신고
경찰, 친모 아동방임혐의 조사

“흑흑, 도와주세요. 엄마를 찾아야 돼요.”

서울에서 체감온도가 영하 25도까지 내려갔다는 8일 오후 5시 40분경. 강북구에 있는 한 편의점 앞 길거리에서 오들오들 떨며 울먹이던 A 양(5)이 주변에 도움을 요청했다. 내복만 입은 아이를 발견하고 깜짝 놀란 함정민 씨(30) 부부는 일단 외투를 벗어 덮어주고는 아이를 달랬다. 발견 당시 아이의 내복은 분비물로 더럽혀져 있었다고 한다.

“일단 A 양이 자기 집이라고 말한 곳으로 함께 가봤어요. 근데 인기척도 없이 문이 굳게 닫혀 있었어요. 아이가 손목에 팔찌를 차고 있기에 봤더니, 다행히 이름과 전화번호 등이 나와 있더군요. 하지만 연락을 해봐도 전화기가 꺼져 있었어요.”

아이를 그대로 내버려둘 수 없었던 함 씨 부부는 일단 편의점 내부로 아이를 데리고 들어갔다. 잠시 안정시킨 뒤 곧장 경찰에 신고했다. 함 씨는 “먹을 걸 사주겠다고 했지만, A 양은 안 먹는다며 고개만 가로저었다. 시종일관 엄마를 찾아야 한다고 했다”고 전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학대예방경찰과 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를 대동하고 현장에 출동했다. 현장에선 아이의 친모인 B 씨도 만났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엄마는 A 양이 집에 보이지 않아 딸을 찾으러 나섰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에 따르면 이날 B 씨는 오전에 딸을 집에 혼자 두고 일거리를 찾아 나갔다. 홀로 아이를 키워온 그는 최근 직장을 얻기 위해 교육을 받는 중이었다고 한다. A 양은 9시간 가까이 집에 혼자 있었으며, 엄마를 찾으려 집을 나섰다가 출입문 비밀번호를 몰라 주변을 떠돌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조사 결과, 지금까지 A 양과 관련돼 학대 의심 신고가 들어온 적은 없다. 아이의 신체에서 학대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날 B 씨의 집을 방문한 경찰은 “집이 매우 지저분해 아동방임을 의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며 “일단 분리 조치를 위해 A 양을 친척 집에 맡겨놓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A 양이 엄마를 찾아 바깥에서 배회한 게 처음이 아니라는 목격담도 나왔다. 편의점 주인 C 씨(39)는 “지난해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에도 오후 6시 반경 A 양이 울면서 가게로 엄마를 찾으러 온 적이 있다”고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방임 역시 현행법상 엄연히 학대의 한 종류로 볼 수 있다”며 “인근 주민들과 목격자 등을 상대로 조사를 이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종민 기자 blick@donga.com
#내복차림#5세#여아#도와주세요#아동방임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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