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핵 정조준한 모사드… 바이든 ‘핵합의 복원’에 암초 되나[인사이드&인사이트]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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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모사드의 ‘그림자 전쟁’

지난달 27일(현지 시간) 이란 테헤란 외곽에서 저명한 과학자 모센 파흐리자데가 암살될 당시 타고 있던 차량. 중동 현지에서는 모사드가 27년간 파흐리자데 주변에 요원을 붙여 일거수일투족 감시하는 등 치밀한 준비 끝에 그를 제거했다고 보고 있다. 사진 출처 걸프뉴스
지난달 27일(현지 시간) 이란 테헤란 외곽에서 저명한 과학자 모센 파흐리자데가 암살될 당시 타고 있던 차량. 중동 현지에서는 모사드가 27년간 파흐리자데 주변에 요원을 붙여 일거수일투족 감시하는 등 치밀한 준비 끝에 그를 제거했다고 보고 있다. 사진 출처 걸프뉴스
이세형 국제부 기자
이세형 국제부 기자
“만나는 사람들마다 드라마 ‘테헤란’ 이야기를 한다. 극 중 내용과 현 중동 정세가 겹쳐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거주하며 개인 사업을 하는 현지인이 들려준 얘기다. 지난달 27일 이란 핵 과학자 모센 파흐리자데가 테헤란 근교에서 총격으로 암살된 후 올해 6∼9월 미국 애플TV플러스에서 상영됐던 이스라엘 드라마 ‘테헤란’이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했다. 이 드라마는 유대계 이란인이지만 이스라엘에서 성장한 여성 타마르가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 요원이 된 후 이란으로 잠입해 핵개발 시설을 파괴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람들이 이 드라마에 몰입하는 것은 파흐리자데 사건의 배후가 모사드라는 주장이 잇따르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란은 사태 직후부터 “이스라엘 소행”이라고 격렬히 반발했고 중동 외교가에서도 모사드 개입설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적지 않다.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 주범 아돌프 아이히만을 체포하고, 팔레스타인 테러단체 ‘검은 9월단’ 요원 및 수많은 이란 핵개발 관계자를 제거한 것으로 유명한 모사드는 과연 어떤 기관일까.

○ “2700차례 암살 작전 수행”


모사드는 이스라엘 건국 다음 해인 1949년 설립됐다. 히브리어로 ‘정보 및 특수 임무 연구소’란 의미를 지녔으며 해외정보 수집, 위험인물 납치와 암살, 적대국의 주요 시설 파괴 등 해외 공작을 전담한다. 조직 및 운영 방식은 철저히 비밀에 가려져 있지만 미 중앙정보국(CIA)은 모사드 요원이 약 7000명, 연간 예산이 27억3000만 달러(약 3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모사드의 작전 부서는 크게 △메차다 △네비오트 △차프리림 △링 △테벨 등으로 나뉜다. 이 중 암살, 납치, 폭파 등을 전문으로 하는 메차다가 핵심으로 꼽힌다. 메차다는 산하에 ‘키돈’(히브리어로 단검이라는 뜻)이란 암살 전문 조직까지 두고 있다. 드라마 테헤란의 여주인공처럼 미인계를 이용해 암살 작전을 벌이는 여성 요원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 언론인 로넨 버그먼이 모사드의 암살 작전을 해부해 2018년 출간한 ‘일어서서 먼저 죽여라(Rise and Kill First)’에 따르면 모사드는 제거 대상의 치약에 독극물을 주입하거나 전화기를 폭발시키는 방식 등으로 2700번 이상의 암살 작전을 수행했다. 주변국에서는 ‘살인 기계’라고 비판하지만 이스라엘 현지에서는 이슬람 국가에 포위된 이스라엘의 생존을 위해서는 일정 부분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만만치 않다.

이스라엘 정부가 정권 성향에 상관없이 모사드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인정해주는 점 또한 모사드가 세계 최고 정보기관이 된 배경으로 꼽힌다. 2016년 1월부터 재직 중인 요시 코헨 현 국장을 포함해 역대 수장 12명 중 5년 임기를 못 채운 이는 4명에 불과하다.

특히 2002∼2011년 모사드를 지휘한 메이어 다간 전 국장(1945∼2016)은 직원들에게 “적의 뇌를 삼키라”는 극단적인 말까지 서슴지 않을 정도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다간 본인이 수차례의 중동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전사였던 만큼 직원들에게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라”고 촉구할 명분을 갖고 있었던 셈이다. 이스라엘 현지 소식통은 “군대와 모사드에서 다양한 실전 경험을 쌓았으며 투철한 애국심을 지닌 내부 인사가 수장이 돼야 한다는 공감대가 사회 전반에 형성돼 있다”고 전했다.

○ 해외 유대인 네트워크 적극 활용


유럽, 중동, 아프리카, 중남미 등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1948년 이스라엘 건국을 계기로 대거 귀환하는 과정에서 생긴 ‘인구 특성’도 모사드의 큰 장점이다. 세계 각지에서 살다 이스라엘로 돌아온 이들은 귀국 후에도 과거 거주지의 언어, 문화, 네트워크를 상당 부분 유지하고 있다.

모사드는 이런 인력들을 활용해 각국의 기밀 정보를 빼돌리고 유사시에는 요원으로 현지에 파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일광 서강대 유로메나문명연구소 책임연구원(한국이스라엘학회장)은 “유대인들은 수천 년간 세계 전역을 떠돌며 거주했기 때문에 자신 혹은 부모가 머문 지역의 언어와 문화에 익숙하고 외모 또한 현지인들과 유사하다”며 “해외에 파견할 비밀요원 자원이 그만큼 풍부하다는 뜻”이라고 평가했다.

모사드의 전설적인 스파이로 1960년대 시리아 국방차관까지 올랐던 엘리 코헨(1924∼1965)은 이집트 출신 유대인이었다. 아랍어, 아랍 문화와 역사에 능통했던 코헨은 시리아와 주변 아랍국의 군사기밀을 줄줄이 빼돌리다 적발돼 사형에 처해졌다.

이란 또한 유대인들이 많이 거주했던 나라 중 하나다.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1979년 이란의 이슬람 혁명 전후로 이란에서 이스라엘로 이주한 유대인과 그 후손들이 최소 13만5000명에 이른다. 이들은 모사드가 이란에서 벌이는 각종 공작에 상당한 도움을 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이란 핵개발에 철저히 대응


설립 후 상당 기간 나치 전범이나 이슬람 무장단체 하마스와 헤즈볼라 인사 등을 제거하는 데 주력했던 모사드는 21세기 들어 이란 핵개발 대응을 저지하는 것에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다.

중동 맹주를 자처하는 이란이 서방의 계속된 경제 제재에도 “지도에서 이스라엘을 지우는 데 쓰겠다”며 핵무기 개발을 계속하자 이스라엘 역시 핵개발 관련 주요 인사를 속속 제거하고 있다. 이스라엘 현지 언론은 모사드가 1993년부터 무려 27년간 파흐리자데 주변에 정보원을 심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한 후 치밀한 준비 끝에 암살을 거행했다고 보도했다.

중동 소식통들은 파흐리자데 이전에도 모사드 공작으로 사망한 이란의 핵개발 인사가 수십 명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2010년 마수드 알리 모하마디 테헤란대 핵물리학 교수는 자택 근처 주차장에서 원격조종 폭탄을 실은 오토바이가 폭발해 숨졌다. 2011년에도 이란 혁명수비대에서 미사일 담당 업무를 맡았던 하산 테라니 모가담 장군과 휘하 인력이 폭사했다.

유명 핵 과학자로 우라늄 농축 업무를 담당했던 무스타파 아흐마디 로샨은 2012년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던 남자가 차량에 부착한 자석 폭탄에 의해 숨졌다. 제거 방식의 대담성 등을 감안할 때 이런 공작을 자행할 기관은 모사드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모사드는 2018년 1월 테헤란의 한 비밀 창고에서 약 5만5000쪽의 문서, CD 183장 분량의 이란 핵개발 자료를 탈취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당시 기자회견을 자청해 “이란이 2015년 버락 오바마 당시 미 행정부와 핵합의를 체결했지만 이런 자료들을 숨기며 비밀리에 핵을 개발해 왔다”고 주장했다.

모사드는 올해 7월 이란 중부 나탄즈 핵시설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의 배후라는 의심도 받고 있다. 당시 화재로 이란이 신형 우라늄 농축용 원심 분리기를 생산할 예정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올해 1월 미군이 이라크 바그다드 공항에서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을 공개 암살할 때도 모사드가 각종 정보를 미국에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란에 적대적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달리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은 이란 핵합의 복원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이를 저지하기 위한 모사드의 추가 공작이 벌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센터장은 “이스라엘을 철천지원수로 여기는 이란 내에서 이렇듯 대담하고 광범위한 공작을 계속 진행한다는 것만 봐도 모사드란 조직의 역량을 알 수 있다”고 진단했다.

○ 北-이란 협력에도 촉각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모사드가 한국에도 요원을 파견했다는 게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 중동 전문가는 “국내에 모사드 요원이 들어와 있을 것이고, 북한 핵무기와 미사일 정보를 수집하는 게 주 업무일 것”이라고 전했다.

모사드가 북핵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이유는 북한이 이스라엘의 적국인 이란 및 시리아의 핵심 우방이라는 점과 무관치 않다. 특히 북한이 이란 핵과 미사일 개발 과정에서 상당한 협력을 하고 있다는 설이 오랫동안 제기된 만큼 이란 핵개발을 저지하기 위해서라도 북한 동향을 파악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헤즈볼라와 하마스에 북한 무기가 흘러들어갔고 이들이 이스라엘 국경지대에 침투용 땅굴을 만들 때도 북한이 관련 기술을 제공했다고 보고 있다. 알론 레프코위츠 이스라엘 베이트바렐대 정치학과 교수는 “조 바이든 미 행정부 출범 후에도 미국의 대북제재가 이어지면 외화벌이가 시급한 북한이 중동과 북아프리카에 무기를 계속 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세형 국제부 기자 turtle@donga.com


#이란#핵#모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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