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야당 비토권 폐지는 공수처 탄생 명분 파괴이자 약속위반

동아일보 입력 2020-11-20 00:00수정 2020-1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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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처장 추천회의 3차 회의에서 추천이 불발되자 더불어민주당은 야당의 비토권을 없애는 공수처법 개정을 통해 연내 출범을 관철하겠다고 밝혔다. 25일 법사위에 개정안을 상정해 의결하고 다음 달 2일 본회의에서 통과시키겠다고 한다. 고작 3차례 회의를 갖고 추천이 불발됐다고 해서 공수처 제도의 근간인 처장 선출 방식을 바꿔버리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민주당이나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추천한 후보만이 아니라 법원행정처장과 대한변호사협회장이 추천한 후보마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추천 불발의 책임을 국민의힘에 돌리고 있다. 그러나 공수처를 둘러싼 시비와 논란 때문에 공수처장을 할 만한 역량과 중립성을 갖춘 사람들이 추천되는 걸 거부해 인물난을 겪었다.

초대 공수처장은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을 뽑아 공수처를 구성하는 역할을 맡는다. 초대 공수처장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공수처의 성격 자체가 결정될 수 있기 때문에 초대 공수처장 선정에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공수처가 연내 출범에 쫓겨야 할 다급한 이유는 없다. 현 후보들 가운데서 여야가 합의할 후보가 없다면 재추천을 받아서라도 여야 모두가 신뢰하는 공수처장을 뽑으면 된다.

지난 20대 국회에서 민주당이 공수처법을 강행 처리하면서 내세운 핵심 명분이 야당에 준 비토권이다. 공수처가 집권세력에 예속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될 때마다 민주당은 야당이 찬성하지 않으면 공수처장이 추천될 수 없으므로 정권 입맛에 맞는 사람을 임명할 수 없는 구조라고 누누이 강조했다. 현 공수처 제도는 그 같은 야당 비토권을 전제로 성립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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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토권을 명문화한 것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의사결정 참여자 모두가 인내하면서 합의를 찾아가겠다는 약속이다. 야당이 찬성하지 않으면 공수처장을 추천할 수 없고, 그런 과정이 번거롭고 시간이 걸려도 그것이 공수처의 정치적 중립성 독립성을 보장할 최소한의 장치임은 민주당도 알고 야당도 알고 국민도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제 와서 시치미를 떼고 공수처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최후의 보루를 없애겠다고 하니 이율배반이 따로 없다.

민주당은 공수처법이 시행되기도 전에 이미 한 차례 개악을 했다. 검찰이나 경찰이 고위공직자의 비리 첩보를 획득해 수사를 하고 있을 경우 반드시 공수처에 보고하고 공수처장이 이첩을 요구하면 따르도록 한 것이다. 이런 개정만으로도 수사기관 간의 견제가 사라져 공수처법은 처음 국회에서 통과될 때보다 더 큰 우려를 낳고 있다. 여기에 더해 야당의 비토권까지 없애겠다는 것은 공수처 탄생 명분의 파괴이자 기만이다.
#비토권#폐지#공수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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