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의 재택근무, 사무실은 사라질 것인가[광화문에서/김유영]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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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영 산업2부 차장
김유영 산업2부 차장
대기업 마케터인 서모 부장(43)은 올해 3월 재택근무를 시작할 때 내심 좋아했다. 1시간씩 걸리는 출퇴근 시간에 운동하거나 책을 읽을 시간을 벌었다. 상사 눈치를 보며 종종 늦게까지 있어야 했던 일도 사라졌다. 노트북과 와이파이가 있으면 어디서든 일하는 ‘디지털 노마드’가 될 줄 알았다. 반년이 지난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그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게 차라리 편할 때가 있다”고 말한다.

왜일까. 화상회의가 여러 차례 이어지다 보니 화면은 아예 꺼놓고 소리만 키운 채로 다른 일을 할 때도 있고 사무실이라면 몇 마디 말로 간단히 될 일을 여러 차례 e메일이나 메신저를 주고받으며 해결해야 할 때도 있었다. 상사에게 보고해도 한참 후 답이 돌아와 진이 빠졌고, 일과 일상의 경계가 무너지며 집에 있어도 쉬는 것 같지 않은 피로감이 이어졌다. 이른바 재택근무 탈진(burn-out) 혹은 줌 피로(Zoom Fatigue)다.

그래서인지 1993년 일찌감치 재택근무를 시작했던 IBM은 2017년 이를 중단했다. 가장 최근에는 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건체이스가 코로나19로 시작한 재택근무를 중단하고 직원들을 사무실로 불러들였다. 아마존은 아예 사무실을 늘리고 있다. 미국 뉴욕 맨해튼 금싸라기 땅인 5번가에 있는 백화점 건물을 10억 달러(약 1조1500억 원)를 주고 사들여 직원 2000명이 근무하는 사옥으로 한창 보수 중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혁신의 씨앗’은 대면 근무에서 비롯된다는 판단에 따른 영향이 크다. 얼굴을 맞대고 일하는 과정에서 ‘생각의 섞임’을 통해 창의적인 생각이 샘솟는다는 것. 의사소통에서도 비언어적인 신호(non-verbal cue)까지 포착해야 상대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협업도 원활하게 할 수 있다. 넷플릭스의 리드 헤이스팅스 최고경영자(CEO)는 ‘규칙 없음’이 규칙일 정도로 직원들에게 전폭적인 자율성을 부여해 기업을 성장시키고 있지만 정작 재택근무에 대해서는 “딱히 득 될 게 없다(few positives)”고 단언한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재택근무 확산이 빨라질 것이며, 코로나19가 종식되어도 사무직의 일하는 방식은 바뀔 것으로 보인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는 10년 내에 직원 절반이 재택근무를 할 것으로 예상했고, 트위터는 직원이 원하면 영구히 재택근무를 할 수 있다고까지 선언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재택근무도 장기화되자 직원들끼리 친밀감과 유대감을 다지기 위해 ‘온라인 티타임’을 갖거나 평소엔 재택근무를 해도 특정일에는 사무실로 나와 일하는 ‘오피스 데이’를 만드는 등 보완책을 마련하는 기업도 적지 않다.

재택근무의 장점은 분명 존재하지만 혁신은 예상치 못한 우연한 만남(serendipity)에서 나온다. 혁신의 돌파구가 인구 100만 명 이상인 도시에서 생겨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은 윤혜진 미국 노스웨스턴대 켈로그경영대학원 교수는 “재택근무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재택근무로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일 수 있지만 혁신은 결국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다양한 생각을 접하는 과정에서 나온다는 설명이다. 코로나 시대에도 혁신을 바탕으로 성장을 이어 나가려면 기업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실마리를 얻을 수 있는 부분이다.

김유영 산업2부 차장 abc@donga.com
#코로나19#재택근무#사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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