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안전 보장은 국가의 무한 책임입니다”[오늘과 내일/정연욱]

정연욱 논설위원 입력 2020-09-29 03:00수정 2020-09-2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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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는 김정은 통지문, 사과문으로 둔갑
김정은의 ‘善意’에만 기댄 평화는 공허할 뿐
정연욱 논설위원
문재인 정권은 조난 사고만 발생하면 긴급 구조에 기민하게 대응해왔다. 세월호 학습효과 탓일 것이다. 2017년 12월 서해상 영흥도 인근 낚싯배 전복 사고가 나자 문 대통령은 이른 아침인데도 “구조 작전에 최선을 다해 달라”고 긴급 지시를 했다. 대통령이 주재하는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참석자들은 10초간 묵념까지 했다. 대통령의 비장한 메시지도 나왔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이 같은 사고를 막지 못한 것과 또 구조하지 못한 것은 결국은 국가의 책임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관한 국가의 책임은 무한 책임이다.”

3년이 지나 같은 서해상에서 벌어진 북측의 우리 국민 피살 사건에 대한 대응은 너무나 달랐다. 표류하던 비무장 민간인을 구조하기는커녕 사살한 패륜적 사건이 벌어졌는데도 우리 군은 6시간 동안 손을 놓고 있었다. 으레 나올 법한 대통령의 긴박한 구조 지시도 없었다. 사건 발생 후 북측이 “사살하고 시신을 불태울지 몰랐다”고 한 군 당국의 변명은 너무 한심해서 “우리 군이 맞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국민 생명을 지켜야 하는 국가의 무한 책임은 실종됐다. 북측의 만행이 낚싯배 사고만도 못하다고 판단했단 말인가.

지난해 대통령은 지구 반대편에 있는 헝가리 유람선의 조난객 구조를 위해 외교부 장관까지 급파했는데도 정작 외교부 장관의 역할이 절실했던 이번엔 장관이 심야 관계 장관회의에 배제된 채 사태 파악도 못 했다고 한다. 이런 와중에 친문 세력은 ‘미안하다’는 김정은의 통지문을 이례적인 사과문이라고 극찬하면서 김정은을 ‘계몽군주’로 떠받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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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앞에만 서면 움츠러드는 현 정권의 민낯이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1월 나포된 북한 선원 2명은 신문 과정에서 일관되게 귀순 의사를 밝혔는데도 결국 북한에 강제 송환됐다. 논란이 커지자 당시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선원들은 죽더라도 돌아가겠다는 진술도 했다”고 주장했지만 귀순 후 조사 과정에서 그런 말은 없었다.

남북은 대결과 공존의 특수관계임을 부인할 수 없다. 양면을 함께 보지 않고 한쪽으로 기울어지면 균형추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우리 국민의 안전, 생명 보호라는 국가의 엄중한 책무는 시류에 따라 달라져서는 안 된다. 가해자인 북한에 응당 해야 할 말도 못한 채 김정은의 선의(善意)에만 기댄 평화는 지속될 수 없을 것이다.

이해찬은 언론 인터뷰에서 진보 진영이 ‘20년 집권’해야 할 명분을 정조(1752∼1800) 사후 220년 역사 지형에서 찾았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 빼면 210년 동안 수구보수 세력이 집권한 역사였기에 진보 세력이 20년 더 집권해야 편향된 사회를 바로잡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우리 역사를 이렇게 제멋대로 재단하는 것도 어이가 없지만, 진보 진영을 200년 넘게 굳어진 보수 세력의 압박을 헤쳐 나가는 개혁 세력으로 포장하는 발상도 또 하나의 궤변일 뿐이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자파 세력이 하는 일은 무조건 ‘절대선’이고, 상대방 주장은 ‘절대악’으로 선을 긋는 편 가르기는 당연한 책무가 된다. 이러니 강경 친문 성향의 광복회장이 북측의 우리 국민 피살 사건에 대해 “친일세력이 민족을 이간시킨 불신이 근본적 원인”이라며 가해자 대신 내부에 총질을 하는 것이다.

다시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관한 국가의 책임을 엄중하게 물을 때다. 문 대통령이 3년 전 낚싯배 사고 당시 역설했던 국가의 책임은 좌우, 보수-진보 진영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
#북한 우리 국민 사살#문재인 대통령#북한 사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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