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대목만 바라보고 가득 들여놓은 과일, 순식간에 잿더미”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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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 청과물시장 대형화재… 점포-창고 20개 불타 상인들 눈물
50억∼60억 손실… 인명피해 없어
“코로나로 장사안돼 명절만 고대… 가게마다 수천만원어치씩 쌓아놔
성한 것도 탄 냄새 배 판매 못해”

추석 연휴를 앞둔 21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 청과물시장에서 한 상인이 불에 새카맣게 타버린 자신의 가게를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날 새벽에 발생한 화재로 시장 내 점포 224곳 중 19곳이 소실됐다(위쪽 사진). 소방당국은 불이 난 지
 3시간 만인 오전 7시 19분경 큰 불길은 잡았지만 오후까지 잔불을 정리했다. 뉴스1·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추석 연휴를 앞둔 21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 청과물시장에서 한 상인이 불에 새카맣게 타버린 자신의 가게를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날 새벽에 발생한 화재로 시장 내 점포 224곳 중 19곳이 소실됐다(위쪽 사진). 소방당국은 불이 난 지 3시간 만인 오전 7시 19분경 큰 불길은 잡았지만 오후까지 잔불을 정리했다. 뉴스1·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추석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21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에 있는 청량리청과물시장.

과일도매상 ‘광영농산’의 이준식 사장(57)은 검게 그을린 채 무너져 내린 저장고 앞에서 속절없이 줄담배를 피웠다. 10평 남짓한 저온저장고에는 포도와 사과 등이 가득했지만 이젠 형체도 알아볼 수 없었다. 이 사장은 “아내와 아들까지 온 가족이 매달려 꾸려왔다. 5월에 결혼한 아들 살림에 보탬이 되고 싶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소방에 따르면 추석을 불과 열흘 앞둔 이날 오전 4시 33분경 “청과물시장 2번 출입구 부근의 한 창고에서 불이 났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소방은 인력을 300명 가까이 투입했으나 밀집한 가게들로 번진 불은 7시간이 걸려서야 진압됐다. 그 사이 점포 19개와 창고 1개가 소실됐다. 청과물시장 상인회의 동영화 회장은 “대략 50억 원에서 60억 원의 재산 피해를 입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명절 대목을 앞뒀던 시점이라 피해는 더 크고 치명적이었다. 상인회에 따르면 설날이나 추석에 입고되는 과일 수량은 평소보다 평균 10배가량 많다. ‘광성상회’의 오모 사장(64)도 “추석을 맞아 기존 물량의 5배 정도 들어왔다. 피해액이 8000만 원을 넘는다”며 눈물지었다.

상인들의 억장이 더 무너져 내린 건 이번 추석에 건 기대가 워낙 컸기 때문이다. 상인 박모 씨(65·여)는 “올해 코로나19 여파로 장사다운 장사도 못 해봤다”며 “추석을 잘 넘겨 손자들 용돈이라도 쥐여줘야지 했는데 허탈하다”고 말했다. 동북상회의 고모 사장(54)은 “이번 여름 장마에 태풍까지 겹쳐 농산물 값이 40% 이상 올랐다. 금전적 피해가 더 커졌다”고 한숨지었다.

직접 화마를 당하지 않았다고 피해가 없는 건 아니다. 가까스로 불길을 피한 과일도 화재 진압용 물에 젖거나 연기가 배면 폐기 처분해야 한다. 40년간 과일 장사를 해온 A 씨(64)는 “과일은 의외로 민감해 불길의 냄새만 배도 상품으로 팔리지 않는다”고 전했다.

피해 가게들이 과일 등 신선식품을 취급하는 곳이 많은 점도 근심거리다. 청과물 보관용 냉동·냉장시설을 갖춘 대형 창고가 불에 탔기 때문이다. 사과 3500만 원어치를 잃었다는 상인 김모 씨(30)는 “저온창고가 없으면 과일 보관이 안 돼 장사 자체를 할 수 없다”며 “추석은 물론 연말 장사까지 어려워졌다”고 막막해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형석 의원실에 따르면 해당 시장의 화재 안전 등급은 일선 소방서가 관리하는 ‘C등급’이다. 소방청은 노후 건축물 등 화재 위험이 큰 전통시장을 대상으로 화재 안전등급(A∼E)을 분류하고 있다. 소방청이 관리하는 E등급이 아니면 특별점검이나 전문가 화재 안전컨설팅 대상은 아니다.

소방의 1차 현장조사 결과, 이날 화재는 청과물시장과 맞닿은 전통시장의 한 통닭집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소방당국 관계자는 “합동 감식은 22일 오전 11시부터 서울소방본부 서울지방경찰청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등이 참여해 진행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동대문구에 따르면 화재가 발생한 점포들에는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발화 당시 화재 알림 장치가 작동해 인명 피해는 피할 수 있었다. 구 관계자는 “피해 상인들의 화재보험 가입 여부를 파악하고 있다. 관련 법령을 검토해 지원 방안을 마련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유채연 인턴기자 연세대 철학과 4학년
#청량리 청과물시장 화재#추석 연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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