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따라가 반드시 리커버리”… 조상현 감독이 혼자 영화 보고 피자 한 판 포장하는 까닭[유재영 기자의 보너스 원샷]

  • 동아일보

왜 어느 팀은 잘 돌아갈까. 지난 시즌 남자프로농구(KBL) 챔피언이자 이번 시즌에도 선두인 창원 LG 세이커스 전력은 왜 좀처럼 흔들리지 않을까. 기복 없는 힘의 근원을 알고 싶었다. 조상현 감독에게 물었다.

조 감독은 홈인 창원에서 경기가 없는 날엔 “완벽한 외톨이가 된다”고 했다. 혼자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는 피자 한 판 포장해 숙소로 들어온다. 하루이틀 일상이 아니다. 피자 전문점도 아닌 맥줏집 안주용 피자인데 입맛에 정확히 ‘꽂혔다’. 가족이나 코치들, 지인과 시간을 보낼 것 같지만 아니다. 선수들에게도 웬만하면 연락하지 않는다. 붙잡지 않고 놓아둔다. 거리를 유지하며 자신을 회복한다.

코트에서는 정반대다. 선수들에게 “훈련 1시간 30분만 집중해 달라”고 요구한다. 함께 외치는 주문이 있다. “리커버리(Recovery)!” 일종의 복구다. 일상에선 놓아두고 코트에선 붙잡는다. 놓쳤다가도 반드시 따라붙는 그의 농구 설계와 닮았다. ‘조상현표’ 농구는 한번 잡혀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태도와 구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 마레이에서 시작된 수비 설계

이집트 출신 센터 아셈 마레이에게 작전 지시를 하고 있는 조상현 감독. KBL 제공
이집트 출신 센터 아셈 마레이에게 작전 지시를 하고 있는 조상현 감독. KBL 제공

“LG에 와서 아셈 마레이를 보고 수비 농구를 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출발점은 외국인 센터 마레이(이집트)였다. 마레이는 수비의 철옹성이다. 리그 리바운드와 가로채기 1위. 골밑에서 잘 버티고, 끈적하게 막고, 집요하게 뺏는다. 상대 팀은 골치가 아프다.

“경기당 30~40점씩 넣는 선수는 아니잖아요. 부임 때부터 마레이 중심으로 상대를 귀찮게 해서 최대한 점수를 안 주고 이기자는 농구 설계 방향을 잡았죠.”

이 목적 설계 성과는 숫자로 드러난다. LG는 팀 리바운드 1위, 수비 리바운드 1위다. 상대 공격 리바운드와 2차 득점 확률이 낮아진다. 자연스럽게 적은 실점으로 이어진다. 수비 효율(DEFRTG·Defensive Rating)은 101.8. 100번 수비에서 101.8점만 내줬다. 역시 리그에서 가장 낮다.

상대는 LG를 만나면 3점슛으로도 재미를 못 보고 있다. 조 감독이 가장 싫어하는 장면이 ‘편안한 3점 허용’이다. 조 감독이 정한 기준은 한 경기 3점슛 10개 미만 허용. 실제로 상대 팀은 LG 전에서 경기당 3점슛을 평균 24.2개만 시도해 7.0개를 넣었다. 성공률 28.8%에 불과하다. 덜 쏘게 하면서도 어렵게 쏘게 만든 결과다.

LG 공격은 여러 공격 지표 평균 리그 중상위권이다. 압도적이지 않다. 미국프로농구(NBA) 지난 시즌 챔피언이자 이번 시즌도 선두인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와 닮았다. 수비로 지지 않는다. 오클라호마시티 DEFRTG도 105.6으로 리그 최저 수준이다. 실책에 의한 실점, 속공 실점은 리그에서 가장 적다. 공격보다 일관된 수비 태도, 집중력, 구조와 동선 복구(리커버리) 관리에 방점이 찍혀 있다.

LG 가로채기 숫자는 많지 않다. 상대 턴오버를 억지로 만들기보다 공격 시간을 소모시키는 데 초점을 둔다. 탑에서의 무리한 트랩 대신 사이드라인 쪽 유도, 드리블 방향 제한, 패스 각 차단으로 상대의 첫 옵션을 없앤다. 상대는 ‘터프 샷’을 쏘게 되고, 이는 낮은 야투 성공률로 이어진다. 페인트존 진입이 어려워지면 장거리 슛이 늘고 공격 효율도 떨어진다.

코트 리커버리를 위한 초집중의 시간. LG 세이커스 제공
코트 리커버리를 위한 초집중의 시간. LG 세이커스 제공

● 숫자에 잡히지 않는 복구의 가치

―상대의 공격 선택지가 하나씩 지워지는 것 같다.
“맞더라도 쉽게 맞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핵심은 리커버리예요. 스크린에 걸려도 끝까지 따라붙어 지연시키라고 합니다. 뚫려도 페인트존을 쉽게 내주지 않는 간격 유지가 필요하죠. 마지막 리바운드까지 책임지는 동선을 확보합니다. 공격이 실패했을 때 백코트도 빨라야 하고요. 한발 늦었어도 끝까지 쫓아가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정렬하는 복구가 중요합니다.”

이런 수비 태도와 동선, 간격과 복구 타이밍은 수치로 잘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조 감독은 경기 후 기록지를 집요하게 들여다보지 않는다. 마레이와 국가대표 슈터 유기상의 기록 정도만 확인한다. 대신 코트 리커버리를 유지할 수 있는 코트 밖 리커버리에 더 신경을 쓴다.

“이기든 지든, 특히 패하고 나서는 곧장 락커룸으로 안 가요. 감독실 문을 먼저 엽니다. 선수들도 얼마나 기분이 안 좋겠어요. 감정에 지배돼 기록을 들이밀면 역효과죠.”

마레이와 아시아쿼터 칼 타마요도 리커버리 차원에서 ‘리스크’를 관리한다.

“박살 나는 경기를 보면 대체로 마레이와 타마요 멘탈이 먼저 흔들려요. 심판만 쳐다보고 항의만 하죠. 불평이 있으면 나한테 하라고 합니다. 팀은 건드리지 말자고요.”

리커버리 기강을 무너뜨리는 행동은 용납하지 않는다. 버스 탑승 시간 같은 사소한 규율도 칼같이 지킨다. ‘1~2분쯤 괜찮겠지’ 하는 순간, 버스는 이미 출발한다.

● 코트 밖 에너지 정렬에 방점

조 감독은 최근 연승 흐름 속에서도 쉬는 날마다 자신의 코트 밖 리커버리를 반복한다. 조언을 듣고 전술을 재포장하기도 한다. 휴대전화에는 대학 시절 은사 최희암 전 감독 이름이 자주 뜬다.

“가드 양준석이 수비를 더 깊게 끌어들이며 다음 플레이를 하는 게 좋겠다고 조언해 주셨어요. 큰 도움이 됐죠.”

최근 양준석이 수비와 ‘밀당’을 하면서 공간을 확보하고, 공격 숫자 우위 상황을 만드는 조율이 능숙해진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코트 밖 시간은 코트 안에서 흐트러진 감정과 에너지를 다시 정렬하는 데 쓴다. 현주엽에게 배운 양고기가 아직 완전히 입에 맞지는 않지만 적응 중이다. 민물매운탕도 최근 국가대표팀에서 전희철 감독과 함께 먹으며 익숙해졌다고 웃는다. 낯선 것을 받아들이며 앞으로 가는 적응과 확장의 리커버리다.

영화관의 고요함과 피자 한 판의 온기 그리고 코트에서 끝까지 따라붙어 복구하는 잰걸음. 소란스럽지 않은데 참 단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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