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을 검사로 생각하지 않습니다”[오늘과 내일/정원수]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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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師出以律’ 방치한 동부지검의 秋 장관 아들 수사
불신 너무 커 어떤 수사 결과에도 재수사 불가피

정원수 사회부장
정원수 사회부장
“우리 ‘올드보이들’은 요즘 검찰을 후배들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 전직 검찰총장에게 서울동부지검이 수사 중인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서모 씨(27)의 군 복무 당시 특혜 의혹 사건에 대해 묻자 예상 밖 답변이 돌아왔다. “주역에 ‘사출이율(師出以律·출정하는 군대에 기율이 없으면 이겨도 분란이 온다)’이라는 말이 있다”면서 “누가 뭐라고 해도 국가 기강을 지탱한 건 검찰의 힘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장관이 인사권을 갖고 있어도 검사가 사표를 낼 각오를 하고 수사를 해야 하는데, 그런 걸 기대할 수 있겠느냐”라고 후배 검사들을 질타했다.

특별수사 분야의 고위직을 지내고, 권력층 수사를 한 경험이 있는 또 다른 전직 검찰 고위 인사도 비슷한 말을 했다. “장관을 상대로 한 수사는 오버해서도, 모자라서도 안 된다. 경계선을 가야 한다. 검사장과 차장검사가 직접 챙겨야 하는데 이해가 안 된다.”

그동안 서울동부지검의 행보를 보면 선배 검사의 혹평이 지나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해 12월 30일 추 장관의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관련 의혹이 해소되지 않자 나흘 뒤인 올 1월 3일 야당은 검찰에 추 장관 등을 고발했다. 일주일 뒤 서울동부지검장이 법무부 검찰국장으로 영전했다. 국방부로부터 휴가 연장과 관련한 자료를 처음 제출받은 것은 2월 25일이었다. 다시 두 달 뒤인 4월 28일 서울동부지검장이 법무부 차관으로 승진하면서 검사장이 한 번 더 바뀐다. 약 한 달 뒤인 5월 25일에야 첫 참고인 조사가 시작되고, 서 씨의 군 복무 당시 군 관계자 5명을 6월 26일까지 한 차례씩만 조사했다.

서 씨는 그때까지 조사하지 않았다. 전현직 검사들이 모두 “이번 고발 사건은 아무리 길어도 한 달이면 충분하다”고 평가하는데, 수사가 서 씨 출석 앞에서 갑자기 멈춘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때문” 등의 변명이 수사팀에서 나오지만 궁색해 보인다. 서 씨의 진료기록 등에 대한 첫 압수수색은 현 검사장이 부임하기 닷새 전인 8월 초순에야 실시됐다.

수사 속도보다 수사 과정은 더 석연찮다. “추 장관의 보좌관이 전화를 걸어 휴가 연장을 문의했다”는 군 관계자 2명의 핵심 진술이 조서에서 빠진 것이다. “어떤 근거로 그런 얘기를 하느냐”고 묻고, “기억이 뚜렷하지 않다”고 답변하면 그대로 적으면 되는 기본적인 책무를 어긴 것이다. 조서 누락은 검찰 수사에 대한 불신의 상징과도 같은데, 장관을 상대로 한 수사에서 그런 결정적인 실수를 한 것은 수사 의지를 근본부터 의심하게 만들었다. 차일피일 수사 종결을 미루다가 늑장·부실 수사 의혹이 제기되자 조서 누락에 책임이 있는 검사를 다시 수사팀으로 불러들인 건 가장 황당한 일이다. “과거에는 조서 누락 경위가 허위공문서 작성인지를 수사하는 것으로부터 재수사가 시작됐다”는 선배 검사의 말이 무겁게 느껴진다. 서울동부지검이 뒤늦게 검사 수를 늘리고, 수사 속도를 내고 있지만 어떤 결과를 내놓더라도 국민의 신뢰를 얻기 어려울 것이다.

검찰 안팎에서 특별수사팀과 같은 독립된 수사팀 구성에 대한 요구가 있지만 승인권자인 추 장관은 이를 자청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검찰개혁이 국민의 뜻이고, 저의 운명적 책무라고 생각한다. 기필코 검찰개혁을 완성하겠다”는 엉뚱한 얘기만 하고 있다. 선배 검사 중 한 명은 “검찰을 삼류(三流)로 떨어뜨리는 게 목적이라면 검찰개혁이 맞겠다”고 힐난했다. 흠결은 있었지만 그래도 대통령의 아들과 대통령 등 살아있는 권력 수사에 두려움이 없었던 검찰이었다. 선배들의 고언을 현직 검사가 새겨들어야 한다. 국민적 의혹을 외면한 검찰에 미래는 없다.

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올드보이#검사#방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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