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닿으려는 간절함 있다면 언어 장소 장애 넘을 수 있어[광화문에서/손효림]

손효림 문화부 차장 입력 2020-09-08 03:00수정 2020-09-0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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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효림 문화부 차장
“…시인은/어느 누구에게도 영혼 팔지 말고/권리 못지않게 의무 행하며/생명의 존엄/도도하게 노래하라 해야 한다”(‘시인1’)

“…세상에는 결론이 없다/우주 그 어디에도 결론은 없다/결론은 삼라만상의 끝을 의미하고/만물은 상극의 긴장 속에서 존재한다…”(‘모순’)

우리말로 또박또박 흘러나오는 박경리 선생의 시. 낭송하는 이들은 푸른 눈에 금발, 검은색 커다란 눈에 콧날이 오뚝한 러시아 학생들이었다. 지난달 21일 온라인으로 열린 제2회 박경리문학제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국립대 모스크바국립외국어대 학생과 교수들은 러시아에서, 한국 작가와 교수 등은 한국에서 4시간 동안 논의를 이어갔다. 한국과 러시아가 분야별로 포괄적으로 소통하고 교류하기 위해 만든 한러대화(KRD)에서 마련한 행사였다.

한국학, 한국어를 전공하는 러시아 학생들은 시의 의미를 음미하며 한 단어 한 단어 정확하게 발음했다. ‘토지’를 읽고 연구한 러시아 측 참석자들은 “토지에는 모두 700여 명의 인물이 나온다고 하는데, 인물 한 명 한 명이 생생하게 살아 숨쉰다. 작품에 흐르는 강한 생명력도 놀랍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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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룡이 나르샤’, ‘녹두꽃’을 연출한 신경수 PD는 SBS 드라마 ‘토지’의 조연출을 맡았던 때를 떠올리며 “배우들이 열연할 때 카메라 뒤에서 소리 없이 눈물을 닦는 스태프가 많았다. ‘토지’는 마음을 울리는 장면이 가득한 작품이라는 걸 온몸으로 느꼈다”고 말했다. 박경리 선생의 외손자인 김세희 토지문화재단 이사장은 “할머니를 떠올리면 어머니 같은 느낌이 든다. 어머니가 따로 계시지만 제게 할머니는 그런 분이다”라고 했다.

지난달 출간된 ‘서로 다른 기념일’은 청각장애를 지닌 일본인 부부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아이를 낳아 기른 경험을 담은 책이다. 저자인 사진가 아빠 사이토 하루미치는 아이가 자다 깨는 걸 알아차리기 위해 오른손을 아이 가슴 위에 올려놓고 잔다. 아이는 울어도 엄마 아빠가 듣지 못하는 걸 직감으로 알았는지 배가 고프면 엄마의 손을 잡거나 꼬집는다. 그래도 엄마가 잠에서 깨지 못하면 작은 손으로 엄마의 머리카락을 돌돌 말아 쥐고는 “악”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잡아당긴다.

자랄 때 발음 훈련을 받은 사이토 씨는 자신의 발음이 정확하지 않아 수화를 선호했지만 아이가 태어나자 천천히 “너, 의, 이, 름, 은, 이, 쓰, 키”라고 소리 내 말해준다. 이쓰키는 원하는 게 있으면 온몸을 버둥대고, 엄마 아빠와 눈을 맞추기 위해 애쓴다. 부부는 듣고 말할 수 있는 다른 가족과 이쓰키가 함께 시간을 보내게 하며 아이가 언어도 익히도록 한다.

박경리 선생과 그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려는 열망은 언어와 장소를 넘어 활발한 논의를 이끌어 냈다. 사이토 씨 가족 역시 각자 다른 몸을 지녔지만 모든 감각을 활짝 열어 의사를 주고받는다. 서로의 간극을 메우는 건 지혜와 용기, 그리고 노력이었다.

이를 보며 깨닫는다. 소통을 위해 가장 필요한 건 서로에게 다가가려는 간절함이라는 것을.
 
손효림 문화부 차장 aryssong@donga.com

#박경리 선생#제2회 박경리문학제#한국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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