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자에게 은둔 권하는 사회[오늘과 내일/하임숙]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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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가 커지면 규제가 따라와 칭찬 권하는 사회여야 뉴딜도 성공

하임숙 산업1부장
하임숙 산업1부장
“예전엔 선배님들이 왜 나서지 않고 은둔하는지 원망했어요. 그런데 저도 이제 한국에서 활동을 안 하려고요. 포기하면 더 행복해질 것 같아요.”

한창 잘나가다가 정부의 규제에 걸려 맥을 못 추고 있는 한 스타트업 대표는 요새 그야말로 두문불출하고 있다. 잡았던 약속도 다 취소하고 인터넷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다. 우울감을 떨치려고 일부러 취미 활동에만 몰두하고 있다.

그는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 김정주 넥슨 창업자, 김택진 엔씨소프트 창업자 등 성공한 1세대 벤처인들이 후배 창업자들을 위해 사회에 목소리를 왜 내지 않는지 원망했다고 했다. 그러다 정부라는 큰 벽에 부딪힌 요즘에야 그 심정에 공감하게 됐다는 거다.

타다로 이동수단의 혁신을 도모했던 이재웅 전 쏘카 대표는 일명 ‘타다금지법’이 통과된 뒤 아예 제주로 내려갔다. 좋아했던 페이스북 글쓰기도 3월 17일 이후 업데이트가 중단돼 있다. 연락하자 그는 “스스로가 부족했다. 반성하고 있다”고만 했다. 타다 문제만 아니라 사회 이슈 전반에 대해 목소리를 냈던 기존 태도와 정반대였다.

이들이 은둔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아마도 큰 상실감과 무력감일 것이다. 그저 기존 시장에는 없었던 새로운 틈새를 발견했고, 이게 사업이 되겠다 싶어 회사를 창업해 많은 사람들로부터 각광을 받았다. 하지만 회사가 작았을 땐 없던 문제가 규모가 커지니 있다고 주장하는 세력이 생겼고, 창업자들은 일종의 ‘범죄자’ 취급을 받게 됐다. 이러려고 자본금을 투입하고 직원을 채용하면서 투자자를 끌어들이느라 밤잠을 설쳤나 싶었을 것이다.

실제로 3월 6일 밤 국회 본회의에서 열렸던 ‘타다금지법’에 대한 찬반토론회를 보다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당시 금지법에 찬성했던 한 의원은 이재웅 전 대표를 두고 ‘혁신을 빙자한 사기꾼’이라고 칭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회사 직원들까지 싸잡아서 ‘사기꾼 범죄 집단’이라고도 했다. 마치 타다 드라이버들이 범죄자라도 되는 듯이 “심지어 전과 10범도 운전면허만 있으면 할 수 있는 구조”라고 강조했다. 해당 의원의 연설이 진행될 때 일부 의원들은 웃으며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다. 여야 통틀어 185명이 참여한 투표에서 168명이 찬성해 법안이 통과됐다.

기존 이해당사자가 있기에 새로운 시도에는 반대하는 목소리가 클 수 있다. 하지만 새로운 시도에 반대할 땐 하더라도 시도 자체는 존중해야 한다. 그마저 없다면 사회는 정체되거나 후퇴할 것이므로. 하지만 당시 토론회는 존중은커녕 회사가 존립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밤잠을 설치며 TV를 봤을 회사 직원들을 매도했다.

이게 한 회사의 문제만은 아니다. 우리 사회에는 ‘큰 기업은 때려도 된다’는 인식이 이미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은 마치 중소기업의 몫을 빼앗아 이윤을 남기는 집단 취급을 받기에 규제를 통해 억지로라도 토해내게 만들어야 한다는 기류가 있다. 법무부, 공정거래위원회, 고용노동부 등 정부 부처가 일제히 나서서 대기업을 규제하는 법안을 내놓는 상황이다. 이제 이 대기업의 범위에는 성공한 스타트업도 포함되는 분위기다.

정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위축된 경제를 살리겠다며 ‘그린 뉴딜’과 함께 ‘디지털 뉴딜’에 조 단위 자금을 투입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창업활동을 부추기고 새 시도를 칭찬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는 한, 성공한 경영자들이 사회의 큰 스승이 아니라 범죄자 취급을 받는 한 한국판 뉴딜정책은 성공하기 어렵다.

“이런 식이라면 다음 세대 창업자들도 한국에서 활동하려 하겠어요?”

이런 질문이 더는 나오지 않아야 뉴딜정책에 투입될 돈이 돈값을 할 것이다.

하임숙 산업1부장 artemes@donga.com
#뉴딜#은둔 권하는 사회#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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