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불 같은 코로나19의 재확산[사진기자의 ‘사談진談’]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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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베트남 타인호아섬선 해수욕장의 인파. 코로나19 이전의 모습처럼 마스크를 쓴 사람을 찾아볼 수 없다. 유튜브 캡처
22일 베트남 타인호아섬선 해수욕장의 인파. 코로나19 이전의 모습처럼 마스크를 쓴 사람을 찾아볼 수 없다. 유튜브 캡처
장승윤 사진부 차장
장승윤 사진부 차장
산불은 해마다 반복되는 재난이다. 사진기자로서 여러 번 산불 현장을 취재했다. 경험이 일천하던 시절 소방헬기의 진화 작업을 보고 ‘산불이 진화됐다’고 회사에 성급하게 보고한 적도 있다. 그러나 산불은 눈앞에서 사라졌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었다. 잔불까지 꺼져야 끝나는 거였다. 산불 현장에서 수백 m 떨어진 곳으로 날아가 번지는 ‘도깨비불’은 소방대원들의 노력으로는 도저히 어찌 할 수 없는 존재다.

요즘 다시 확산하고 있는 코로나19 확진자 수를 보면서 바이러스가 마치 산불 현장에서 이곳저곳 날아다니던 도깨비불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낮 동안 낙엽 밑에 숨어 있던 잔불은 밤이 되면 바람과 함께 또 다른 산등성이를 난장판으로 만든다. 무증상 보균자 한 명이 비행기를 타고 수천 km를 날아가 다른 국가 전체를 감염시킬 수 있다는 점도 닮았다. 화마(火魔)는 눈에 보이고 병마(病魔)는 비가시적이라는 차이가 있지만 이들을 막는 방법은 비슷할 수 있다.

산불 현장에서 불을 끄는 것은 소방헬기와 소방대원들뿐만이 아니었다. 전문가들이 장비를 이용해 화재를 진압하는 동안 군인이나 주민들은 확산을 막기 위해 멀쩡한 산을 태워 저지선을 확보한다. 방역 당국과 의료진이 소방대원의 역할을 한다면 정치 지도자들과 시민들은 뒤에서 저지선을 만드는 역할을 할 것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멈춰서는 안 된다고 방역 전문가들이 목이 쉴 정도로 부탁했지만 지난 주말 전국의 유원지와 고속도로에는 나들이 나온 시민들로 가득했다.

뒷산 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는데 벌써 밭을 갈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각국의 지도자들은 경제와 개인의 자유를 해치지 않아야 한다는 당위 때문에 결과적으로 섣부른 봉쇄 해제를 단행했고 개인들도 불편함을 못 참고 다시 일상으로 회귀하고 있다. ‘K방역’이라며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린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지금의 K방역은 밤낮없이 확진자 동선을 추적한 공무원과 헌신적인 의료진, 불편함을 감수하고 마스크를 써 준 국민들의 노력 덕분에 가능했다. 과거 사스와 메르스를 경험한 나라들은 학습 경험에 의거해 즉각적인 봉쇄 조치를 취했고 현재 방역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와 비교해 보면 우리가 K방역을 마냥 자랑만 하기는 어렵다. 지금도 정부는 기존 방역 모델을 고수하고 있고 확진자는 좀처럼 줄지 않는다. 국민과 의료진의 피로가 누적되고 있어 더욱 걱정이다.

코로나 청정국 중에는 인구가 9000만 명이 넘지만 현재까지 사망자가 한 명도 없는 베트남이 있다. 베트남은 사태 초기 국경 봉쇄를 선택했고 한국인 격리와 예고 없는 비행기 회항 등 과도할 정도의 조치를 해 원성을 사기도 했다. 여기서 베트남 측의 답변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 제대로 된 진단키트가 없고 의료 시설도 열악한데 형체가 불분명한 바이러스를 잡을 길은 차단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국가 경제의 주축인 수출과 관광을 포기한 것이다. 베트남은 하늘길만 막은 것이 아니었다. 마트와 병원을 제외하고 모든 상점의 문을 닫게 했고 다시 추이를 보며 마을 단위로 봉쇄를 풀었다.

지금의 베트남은 코로나 전으로 돌아갔다. 고3 학생들은 졸업시험 준비로 학교와 학원을 다니고 해수욕장에는 더위를 식히려는 인파로 가득하다. 물론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코로나 확진자가 없기 때문이다. 워터파크에서 물 밖으로 나오면 마스크를 써야 하는 한국과 대조를 이룬다. 어찌 보면 과해 보일 수도 있는 베트남의 방역 조치에 최근 글로벌 기업들의 인식이 변하고 있다. 바이러스로부터 안전한 곳에서 공장이 쉬지 않고 가동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은 베트남의 경제성장률이 아시아 최고를 달성할 것이라는 예측치를 발표했다. 모든 게 사회주의 국가니 가능하다고 말하는 이도 있겠지만 ‘지금 느리게 가는 것이 나중에 더 빠른 것이다’라는 관점에서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과거 강원도 고성 산불을 경험한 선배는 취재를 끝내고 고속도로를 타고 이동하는데 하늘에서 씨앗만 한 도깨비불이 도로를 넘어 날아가는 것을 보고 허망한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저 불씨가 떨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가늠이 되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눈에 보이는 화재 현장의 진압도 이렇듯 허망함의 연속인데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는 얼마나 더 이 더위에 힘을 빼게 할 것인지. 우리는 불을 경험했는데도 아직 불이 뜨거운 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잔불이 있을 수 있다며 불 꺼진 현장에 잠시 더 머무르던 소방대원들과 멀쩡한 산을 태워서라도 산불 저지선을 만들던 화재 현장 주민들의 방법을 쓴다는 마음으로 사람들이 이번 주말이라도 제발 집에서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

장승윤 사진부 차장 tomato99@donga.com
#도깨비불#코로나19#재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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