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스 특수임무부대장 “이 훈장은 전사한 전우들 것”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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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지상군, 오산 죽미령 첫 전투

1970년 6월 미국 애리조나주로 찰스 스미스 씨를 찾아간 지갑종 회장(왼쪽). 유엔한국참전국협회 제공
1970년 6월 미국 애리조나주로 찰스 스미스 씨를 찾아간 지갑종 회장(왼쪽). 유엔한국참전국협회 제공
6·25전쟁 개전 초기인 1950년 7월 5일, 경기 오산 죽미령에서 북한군과 미군이 격전을 벌였다. 미 지상군이 6·25전쟁에서 치른 첫 전투였다. 스미스 특수임무부대는 6시간 15분간의 교전 끝에 탱크 4대를 파괴했으나 170여 명이 전사하거나 실종되는 큰 피해를 입고 후퇴했다. 지연작전 덕분에 한국군은 전열을 재정비할 시간을 벌었다.

이 부대를 이끌었던 찰스 스미스 예비역 준장(당시 중령)은 1975년 무공훈장 중 최고 등급인 태극무공훈장을 받았다. 6·25전쟁 이후 생사가 불분명했던 그를 찾아낸 것도, 한국 정부를 설득해 최고 훈장을 수여하게 한 것도 지갑종 유엔한국참전국협회장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 회장은 “누군가 오보를 해서 스미스가 6·25 때 전사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며 “1968년 오산전투 추도식 때 한 중령이 ‘스미스 장군이 지금 애리조나에 살고 있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미 육군사관학교의 1939년 졸업생 명단을 확인해 애리조나주 피닉스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지 회장은 2년 뒤 피닉스에서 스미스 씨와 만났다. “한국에서 무슨 훈장을 받았냐”고 물었더니 “아무것도 받은 게 없다”고 했다. 가방에 있던 태극기를 전해준 뒤 귀국해 정부에 태극무공훈장 수여를 건의했다.

스미스 씨는 6·25전쟁 25주년이었던 1975년 7월 방한해 태극무공훈장을 받았다. 그날 저녁 지 회장을 찾아가 이렇게 고백했다.

“이 훈장은 내 것이 아닙니다. 전사한 전우들의 것이요, 한 위생병의 것입니다.”

스미스 씨는 1950년 7월 5일 오후 2시 반 후퇴 명령을 내렸는데 한 위생병이 손을 들더니 “나는 후퇴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곳에 부상자가 있어서 자신은 갈 수 없다는 이유였다. 스미스 씨는 “오늘 큰 훈장을 받고 나니 그 위생병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고 말했다고 지 회장은 전했다. 스미스 씨는 2004년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6·25전쟁 70주년#오산 죽미령 첫 전투#찰스 스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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