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그동안 고각(高角) 발사로 미사일 능력을 과시해 왔지만 이번에는 실전 각도로 일본 영공을 넘어 발사했다. 김정은 집권 이후 정상 각도로 발사한 미사일 가운데 가장 멀리 날아갔다. 이번 도발은 ‘괌 포위사격’의 예행연습 성격이 짙다. 김정은은 2주 전 “미국 행태를 좀더 지켜보겠다”며 한발 물러섰지만 국제사회의 압박 강도가 높아지자 다시 도발 사이클을 가동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의 초기 대응은 실망스러웠다. 청와대는 당초 문재인 대통령이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한다고 알렸지만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바꾸고 문 대통령이 중간에 참석할 예정이라고 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았다. 그리고 도발 3시간여 뒤 문 대통령은 “강력한 대북 응징 능력을 과시하라”고 지시했다. 그 전까지 정부 움직임엔 긴박감이 보이지 않았다. 한미 합참의장과 외교부 장관 간, 청와대와 백악관 안보사령탑 간 전화 통화가 이뤄진 뒤에야 강력 대응으로 가닥을 잡았다.
우리 정부는 어제 3시간이나 망설였다. 북핵·미사일은 오직 대화로 풀 수 있다는 편의적 낙관에 근거한 착시현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현실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지만 정부는 여전히 상황 악화만 염려하는 분위기다. 어제 북한 도발 4시간 뒤에도 문 대통령은 “그럴수록 반드시 남북관계의 대전환을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북핵은 궁극적으로 대화로 풀어야 한다. 하지만 단거리미사일 도발엔 전략 도발이 아니라며 축소하기에 급급하고, 정작 전략 도발엔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해선 국민 불신만 키울 뿐이다. 이러다간 대화 국면이 전개되더라도 북한에 끌려다니고, 미국에 외면당하는 처지가 되지는 않을지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