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PP 탈퇴 명령서 첫줄에 “美 노동자 이익 대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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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TPP 탈퇴]트럼프의 정치적 포석은

 “미국인, 특히 근로자들의 경제적 이익을 대표하는 게 우리의 정책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3일(현지 시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를 지시한 행정명령의 맨 앞줄에서 이렇게 밝혔다. TPP 탈퇴는 미 근로자들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미국 우선주의’ 정책과 20일 취임사에서 밝힌 ‘미국 제품을 사라, 미국인을 고용하라’는 원칙을 실현하기 위한 ‘일자리 창출 조치’란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 무역 질서에 지각 변동을 일으킬 TPP 탈퇴를 당초 예상보다 빠르게 선언한 것은 정권의 연착륙과 국정 동력 확보라는 국내 정치적 목표를 겨냥한 포석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CNN은 지난해 대선에서 자신의 주력 지지층이었던 ‘러스트 벨트’(낙후된 중서부 공업지역)의 백인 노동자층을 끌어모아 지지 기반을 강화하는 게 트럼프에게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이들 노동자층은 TPP와 같은 자유무역협정으로 일자리를 잃었다며 지난해 대선에서 보호무역주의 어젠다를 내건 트럼프 대통령에게 몰표를 던졌다.

 지난 8년간 미국에 남은 ‘버락 오바마 흔적’을 지워 버리겠다는 노림수이기도 하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중국의 굴기(굴起)를 견제하기 위해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추진했고 TPP는 그 핵심 수단이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TPP 타결을 앞두고 “중국이 세계 경제 질서를 쓰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기간 내내 “TPP는 재앙적 조치”라고 일축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오바마 전 대통령의 또 다른 대표 어젠다인 오바마케어(건강보험 개혁법) 폐기를 위한 행정명령을 발동한 바 있다.

 취임 후에도 사사건건 자신의 발목을 잡는 민주당의 입지를 좁히기 위해 TPP 탈퇴 카드를 일찍 꺼내들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원래 노동자들을 주 지지층으로 하는 민주당은 TPP에 반대해 온 만큼 트럼프의 TPP 탈퇴 결정에 별다른 반대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도 대선 기간 TPP 폐기를 공언했을 정도다. 오히려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였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논평을 내고 “TPP가 사라지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며 환영했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자유무역을 선호해 온 공화당의 일부 중진은 이번 조치를 비판했다. 존 매케인 상원 군사위원장은 “TPP 탈퇴는 중국에 경제 규칙을 만들 빌미를 줄 뿐 아니라 미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골치 아픈 신호를 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수위 시절 트럼프의 외교고문이었던 리처드 하스 미국외교협회(CFR) 회장도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의 선택을 비판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추진된 TPP 탈퇴는 미국의 경제 성장을 둔화시키고 아시아권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더군다나 일자리가 더 늘어난다는 보장도 없다”는 것이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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