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까지… 참군인 남편다운 선택”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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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이들이 있어 따뜻했습니다]
교통사고 여성 돕다 숨진 정연승 상사

오랜만에 세 가족이 고기를 먹던 날, 유독 잘 따랐던 작은딸이 사진 속 아빠에게 반찬을 먹여주고 있다. “아빠도 드세요”라며. 정연승 상사 가족 제공
오랜만에 세 가족이 고기를 먹던 날, 유독 잘 따랐던 작은딸이 사진 속 아빠에게 반찬을 먹여주고 있다. “아빠도 드세요”라며. 정연승 상사 가족 제공
오전 5시 30분. 출근을 준비하는 남편의 뒷모습은 유독 지쳐 보였다. 지난해 7월 이사한 뒤로 남편은 출근시간을 앞당겼다. “나오지 말고 좀 더 자.” 남편은 배웅하려는 아내를 말렸다. 매일 혼자 두 딸을 학교와 유치원에 보내야 하는 아내를 위한 배려였다. 그런데 그게 마지막이었다. 9월 8일 오전 6시 40분, 정연승 특전사 상사(35)는 교통사고를 당한 여성을 구하려다 신호위반 트럭에 치여 숨졌다.

“그때 3분만 더 붙잡았더라면….” 이렇게 후회하는 아내 안혜경 씨(37)의 눈가엔 요즘도 눈물 마를 날이 없다. 가정적인 남편이었다. 아내와 함께 하는 시간이 좋아 따로 취미도 갖지 않았다. 훈련으로 집을 비울 때가 많은 탓에 쉬는 날이면 아이들을 데리고 외출했다. 애교가 많은 작은딸(6)은 동물 중에서 원숭이를 제일 좋아했다. 아빠가 원숭이띠였기 때문이다.

부모님에겐 자랑스러운 아들이었다. 넉넉지 못한 형편이었지만 힘든 내색 하지 않고 바르게 자랐다. 정 상사의 아버지는 “우리 연승이가 잠수도 하고 하늘에서 뛰어내리는 특전사 군인”이라며 아들 자랑을 입에 달고 살았다.

과묵했지만 마음은 누구보다 따뜻했다. 결혼 전부터 봉사활동을 다녔다. 이때 만난 소외가정 아이에게 따로 필기도구를 사준 적도 있었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을 보면 절대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공사장에서 인부가 추락한 사건을 목격하고 가장 먼저 119에 신고하고 구조대가 올 때까지 현장을 지킨 적도 있다.

하지만 안 씨는 남편의 빈자리가 느껴질 때면 그런 남편을 원망하기도 했다. 얼마 전 작은딸의 유치원 재롱잔치가 열렸다. 평소 “아빠 파병 갔다고 생각하자”며 엄마를 다독이던 속 깊은 딸이었지만 합창 도중 울음을 터뜨렸다. 아빠를 쏙 빼닮은 큰딸(8)은 아빠 생각이 날 때면 답장도 오지 않는 문자메시지를 보내곤 했다.

“그날도 참 남편다운 모습이었죠. 주위에서도 ‘마지막까지 연승, 너다웠다’는 말을 많이 했어요. 아이들이 커서도 우리 아빠가 정말 훌륭하고 멋진 사람이었다는 걸 꼭 기억했으면 합니다.”

김호경 기자 whalefisher@donga.com
#정연승#군인#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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