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안전 최후보루… 물러설 수 없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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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이들이 있어 따뜻했습니다]
메르스 최전선서 싸운 정은숙 간호사

21일 서울 국립중앙의료원 8층 감염병동 간호사실에서 파이팅을 외치는 이정민, 정은숙, 김새미 간호사.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21일 서울 국립중앙의료원 8층 감염병동 간호사실에서 파이팅을 외치는 이정민, 정은숙, 김새미 간호사.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하루 3시간 쪽잠을 자며 환자를 돌봤다. 무더위에 보호복을 입으면 찜통에 들어간 것 같았다. 탈진으로 몇 번이나 쓰러질 뻔했다.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 울고 싶을 때도 많았다. 갑자기 상태가 악화된 환자 때문에 잠을 잘 때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함께 고생하는 동료들을 떠올리며 버텼다.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전쟁’의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한 국립중앙의료원 감염병동 수간호사 정은숙 씨(53) 이야기다.

21일 만난 정 씨는 아직도 ‘전투 중’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다녀온 한 메르스 의심환자를 살피느라 눈코 뜰 새 없었다. 인터뷰 도중에도 수시로 환자 상태를 확인하고 의료진에게 보고했다. 올여름 그는 ‘슈퍼맨’이었다. 이곳에서 치료받은 메르스 확진환자는 30명, 의심환자는 33명이었다. 환자 치료와 보호복 관리까지 모두 그의 몫이었다. 감염 가능성 때문에 사망한 환자의 몸을 소독해 화장터로 보내는 것까지 직접 맡았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책임감으로 전쟁 같은 하루를 버텼죠.” 당시 정 씨를 포함한 의료진은 최후의 보루에 서 있다는 압박감을 이겨내기 위해 하루에도 여러 번 이런 주문을 되뇌었다. 그는 “에크모(ECMO·체외막 산소화장치)를 달아야 할 정도로 병세가 악화됐던 메르스 1호 환자가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했을 때 느낀 보람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환자 치료뿐만 아니라 의료진의 감염을 막는 것도 중요한 과제였다. 간호사들은 순서를 정해 치료를 마친 의료진의 보호복 탈의 과정을 일일이 확인했다. 조금이라도 열이 나는 간호사는 집에서 쉬도록 했다. 국립중앙의료원은 메르스 환자를 치료했던 병원 중 유일하게 의료진 감염이 없었던 곳이다.

“메르스 환자를 돌봤던 모든 의료진이 같은 마음이었을 겁니다.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하는 것, 이것이 국민을 위하는 길이라 생각했습니다.” 정 씨를 만난 지 이틀 뒤인 23일 보건복지부는 ‘메르스 종식’을 공식 선언했다.

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
#메르스#간호사#정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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