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최진석]문자와 한글과 일류국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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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를 지배해야 시대 선도하는 일류국가로 상승
우리문자 ‘한글’ 의미 되새겨야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
우리의 전통적 감성을 높은 수준에서 승화해내어 국민가수라는 칭호를 듣는 조용필이 오랜만에 내놓은 19집 앨범에는 ‘Hello’라는 제목이 달려 있다. 대표곡 제목도 ‘Bounce’이다. 국민가수마저도 오랜만에 발표하는 음반에 우리 문자가 아닌 영어로 된 표지를 걸어야만 하는 이 흐름은 과연 무엇일까.

‘바른 말, 고운 말’이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하는 방송사의 편성표에는 ‘리얼체험’도 들어 있다. ‘희망로드’는 또 무엇인가. ‘해피투게더’ ‘해피선데이’ ‘풀하우스’ ‘오! 마이베이비’ ‘쿡킹코리아’ ‘모닝와이드’ ‘이슈 인사이드’ ‘애니갤러리’ 등. 다 나열하기도 힘들 지경이다. ‘희망의 길’보다 ‘희망로드’가, ‘행복한 일요일’보다 ‘해피선데이’가, ‘아이고! 내 애기야’보다는 ‘오! 마이베이비’가 더 좋게 보이고 더 좋게 들리도록 되어 버린 우리는 도대체 누구인가?

이 문자면 어떻고 저 문자면 어떤가. 재밌고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기만 하면 아무 문자나 써서 의사만 잘 통하면 되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문자’는 그렇게 가벼운 것이 아니다.

인간은 이 세계에 대하여 생존을 도모하는 다양한 반응을 하면서 비교적 일관되게 해석될 수 있는 활동을 한다. 그 활동을 ‘문화’라 하고 그 활동의 결과를 ‘문명’이라 한다. 인간은 가장 근본적인 차원에서 문화적 존재인 것이다. 문화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전략과 사유가 정화되고 정화되어 ‘문자’로 남는다. ‘문자’는 단순히 기록을 하고 의사소통을 하는 기능적 도구로 취급될 것이 아니다. ‘문자’를 통해 ‘문화’와 ‘문명’은 비로소 그 나름대로의 독특한 구조를 형성하고 꽃을 피우고, 그 문자 소유자들의 삶의 양식과 격조는 ‘문자’를 통해 비로소 드러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류 국가들은 문명의 방향과 정체를 들여다보고 거기서 미래 방향에 대하여 독립적 판단을 하고, 그 독립적 판단을 따라 움직인다는 점에서 이류 국가들과 다르다. 이류 국가들은 일류 국가가 문명의 방향에 대하여 제시한 가늠자를 따라 묵묵히 추종하는 삶을 산다는 점에서 여전히 비독립적(非獨立的)이다. 산업의 질적 차이도 사실은 여기서 나온다. 한국은 선진국 진입을 기대한다. 이제는 일류 국가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일류 국가로서 해야 하는 문명에 대한 독립적 판단의 능력을 갖추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문화적 역량이라는 것이 단순히 일류 국가의 품위를 표현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바로 일류 국가의 조건이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화와 인문이 사회를 운영하는 기틀이 될 때 그 나라는 비로소 창의적 역동성으로 무장하는 선도적 길을 갈 수 있게 된다. 선도적 길을 갈 수 있게 하는 문화적 활동은 오롯이 문자에 담긴다. 문화적 역량을 결집하고 문명의 방향에 대한 미래적 비전을 독립적으로 세울 수 있는 큰 희망은 그들이 소유하고 운용하는 문자의 관리 여부에 달려 있다. 독립은 결국 문자의 독립으로 완성된다. 과한 비약이라 하지 말자. 인문적 높이에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것이 사실이다.

인간에게는 최종적 의미에서 문자를 지배하는 사람이 진정한 지배자이다. 문자를 지배하는 사람은 시대의 문법을 지배하는 사람이니 곧 시대정신을 제시하는 사람이고, 이념을 생산하는 사람이고, 기준을 형성하는 사람이고, 빛을 제시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만든 시대정신을 철두철미하게 지키려 하지 않고, 이념이나 기준을 수입하지 않고, 다른 곳의 빛을 내 빛으로 착각하지 않는다. 나로부터 나오지 않는 것은 어떤 것도 창의적이거나 생산적이지 않다. 완벽하지도 않다. 창의와 완벽과 지도적 반열에서 움직이고 싶어 하면서도 외부의 언어를 자신의 언어로 착각한다면, 이는 연목구어(緣木求魚)가 아닐 수 없다. 더 엄중하게 봐야 할 일은 흉내 내기에 익숙해져 있는 자신을 스스로 응시하지 못하게 되어버리는 일이다.

대한민국이 일류 국가로 상승하려면 독립적 사유를 할 수 있는 원초적 조건이 구비되어 있어야 한다. 그 원초적 조건이 바로 우리의 문자, 즉 한글이다. 한글이라는 우리만의 문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제대로 이해할 때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제대로 한 번 살아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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