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위해 한턱 쏜 날, 엄마 가슴엔 ‘구멍’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17일 03시 00분


코멘트

[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뀝니다]
[9월의 주제는 ‘허례허식’]<178>갈수록 버거운 ‘기분내기’

해외에 살다 올해 초 한국에 들어온 나모 씨(44)는 올 초 애들 선물 문제로 고민에 빠졌다. 초등생 딸아이가 “반 아이들에게 괜찮은 선물을 돌려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학교 내 ‘한턱’ 문화를 몰랐던 나 씨는 딸로부터 반장, 부반장이 선출된 직후나 생일 전후 및 방학 전에 ‘수고했다’는 의미로 학부모들이 한턱내는 게 관례라는 얘기를 들었다. 옆 반에선 이미 반장 엄마가 맥도널드 빅맥 세트를 돌렸다는 사실도 들었다. 딸은 “우리는 옆 반보다 급이 높은 것으로 쏴야 한다”고 말했고, 결국 나 씨는 빅맥 세트보다 다소 값이 비싼 버거킹 와퍼 세트를 돌렸다. 초등학교에선 아예 패스트푸드 매장을 통째로 빌려 반 학생들을 초청하는 경우도 많다.

초등학교 및 중고교 반장, 부반장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학생들에게 한턱내는 문화가 경쟁적으로 퍼지면서 학부모들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 되고 있다. 한턱 문화가 무더운 여름에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돌리거나 음료수를 한 캔씩 나눠주는 정도라면 작은 성의로 봐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학생들이 카카오톡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누구는 뭘 쐈다더라’는 식의 비교를 하면서 점차 고가화하는 추세다. 먹는 것뿐만 아니라 고가의 일제 샤프펜슬을 돌리는 경우도 있다. 한 학부모는 “예전에는 1000원짜리 모나미 샤프와 지우개 등을 선물로 나눠주곤 했지만 최근에는 한 자루에 1만 원 정도 하는 일제 펜텔 그래프 1000 샤프나 6000원 가까이 하는 미쓰비시연필의 구루토가 샤프 등을 돌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1만 원짜리 샤프를 반 전체에 돌린다면 한 반 30명 기준으로 30만 원이 든다.

학부모들은 이런 관례가 부담스러우면서도 뾰족한 해결 방법이 없다는 반응이다. 주부 김모 씨는 “옆 반 학부모가 햄버거 세트를 돌렸는데, 내가 과자 한 봉지씩만 나눠주면 다른 아이들이 우리 아이에게 ‘쪼잔하다’ ‘치사하다’는 식의 눈치를 줄까봐 그와 비슷하거나 더 비싼 물품을 찾게 된다”고 말했다.

백연상 기자 baek@donga.com
#허레허식#기분내기#한턱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