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립금 규모가 476조원인데… 가계부보다 못한 연금관리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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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연금 긴급진단/근시안적 설계]연금재정 장기 로드맵 세우자

공무원·국민·군인·사학연금 등 이른바 4대 연금의 지속성에 대한 논란과 운용 부실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특히 고령화와 저출산의 영향으로 돈을 내는 사람보다 받을 사람이 급격하게 많아지면서 4대 연금에 대한 수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높다.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4대 공적연금에는 오랜 기간 지속돼 온 고질적인 문제점이 적지 않다. 특히 불투명한 미래 계획, 젊은 세대에게 부담이 커지는 구조, 전문성이 떨어지는 인력 운용 등은 공통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4대 공적연금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는 연금 운용에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이기도 하다”며 “이 문제들부터 손대야 한다”고 말했다.

① 기금을 어떻게 쓰고 관리할지 목표가 없다


“적립금 규모가 500조 원 가까이 되는 국민연금에 명확한 장기 ‘재정 관리 로드맵’이 없다는 게 이해가 안 갑니다.”

글로벌 자산운용사의 아시아태평양 지역본부에서 근무하며 국민연금과 관련된 리서치를 담당했던 A 씨는 “정부나 국민연금공단에 적립금을 계속 쌓을지와 중·장기적인 적립금 활용 방법 등을 포함한 공식적인 재정 목표가 없다는 점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뚜렷한 재정 목표는 연금의 안정성, 예측 가능성과 직결된다. 그런 만큼 재정과 가입자 규모가 클수록 명확한 재정 목표를 세우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현실을 보면 4대 공적연금 중 가입자와 재정 규모가 가장 큰 국민연금조차 재정 목표가 없다. 적립금을 어떻게 쓰고, 관리할지를 담은 재정 목표가 없다는 건 재정 목표를 세우는 작업 자체가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도 7일 “국민연금 적립금의 예상 고갈 시점(2060년)은 나와 있지만 재정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에 대한 국민적 토론, 합의 과정은 지금까지 없었다”고 말했다.

국민연금보다는 규모가 훨씬 작지만 지난해 말 기준 약 15조7100억 원의 적립금이 있는 사학연금 역시 명확한 재정 목표가 없다. 2021년까지 얼마나 돈이 들어오고 나가는 정도를 예측해 놓은 수준이다.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도 마찬가지다. 두 연금은 적립금이 없기 때문에 국민연금이나 사학연금처럼 장기 재정 목표를 수립하는 게 쉽지 않다. 하지만 두 연금에는 기본적인 재정 계획조차 없다. 권문일 덕성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장기 재정 목표는커녕 ‘수입과 지출을 어떻게 균형적으로 맞추겠다’ 식의 목표도 없다”며 “구체적인 균형 맞춤 원칙 정도는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② 합의 과정에 젊은 세대 참여시켜야

연금의 재정 목표를 마련하는 작업은 연금 가입자 간의 합의 과정이다. 문제는 4대 공적연금 모두 장기적으로 미래세대의 부담이 커지는 구조라는 사실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걷을 수 있거나 쌓아놓을 수 있는 돈(보험료와 적립금)은 줄어들고, 지급액은 늘어나기 때문이다. 지금 상태가 이어진다면 결국 미래세대는 어떤 연금에 가입하든 정도 차만 있지 더 많은 보험료를 내야 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국민연금의 경우도 현재 전망처럼 2060년 기금이 고갈되면 보험료를 20%(현재는 9%) 이상으로 올려야만 지급이 가능하다. 또 향후 연금의 심각한 재정 부실 상황이 발생하면 국가 보조금이 투입될 수 있는데, 이 역시 해당 시점의 국민이 내는 세금일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4대 공적연금의 재정 목표 수립 과정에는 이른바 ‘2030 세대’ 등 젊은층을 적극 참여시켜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미래의 짐’을 직접 감당해야 할 세대의 목소리를 최대한 반영하는 사회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원종욱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사회보장재정추계센터장은 “공적연금의 재정 목표를 논의하는 사회적 기구에 젊은 세대가 참여하는 건 의사결정을 내리는 위치에 더 많이 분포하고 있는 기성세대의 자기중심적 결정을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③ 전문인력 부족한 구조

공적연금의 재정 규모가 커지면서 인력의 전문성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연금이나 재정 전문가보다 정치인이나 고위 관료 출신이 낙하산으로 내려오는 풍토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국민연금공단의 경우 이사장을 지낸 14명 중 기금 운용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는 금융 전문가 출신은 2명에 불과했다. 사학연금과 공무원연금공단도 거의 고위 관료가 이사장을 맡아 왔다. 사학연금관리공단의 경우 최근 10년간 이사장을 지낸 4명 중 1명만 금융 전문가고, 나머지는 모두 고위 관료 출신이다. 공무원연금공단도 전통적으로 이사장은 고위 관료 출신이 맡았고, 2008년 이후 상임이사도 9명 중 5명이 행정자치부(행안부, 안행부) 출신이다.

공단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우수한 기금 운용 인력에 대한 파격적인 처우가 어렵다는 점도 개선해야 할 점. 김 교수는 “지금처럼 일반 직원보다 약간 더 높은 처우를 해주는 식으로는 우수 전문인력을 유치해 운용 노하우를 배우고, 젊은 운용 인력을 양성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4대 공적연금 중 기금 운용 규모가 가장 큰 국민연금의 경우도 운용 전문인력 수가 200명 수준으로 적립금 규모가 작은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1000명)와 네덜란드 공무원연금(ABP·650명)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그러다 보니 국민연금공단 안팎에서는 수익률이 높은 해외 주식이나 대체 투자를 지금보다 공격적으로 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도 지금 인력 수준으로는 이런 투자에 과감히 나서기 힘들고, 나선다고 해도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많다.

이세형 turtle@donga.com·우경임·김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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