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중계 때 “도루하는 주자는 네 번 중 세 번(75%)은 살아야 한다” 같은 해설도 자주 들을 수 있습니다. 저 확률은 도대체 어떻게 구하는 걸까요? 이번에도 정답은 ‘기대득점표’에 들어 있습니다. 어제 칼럼을 놓치신 분들께 설명하자면 기대득점표는 특정한 아웃 카운트와 주자 상황에서 시작해 해당 이닝이 끝날 때까지 올린 평균 점수를 정리한 표입니다.
○ 뛰라!
그러면 감독들이 도루 사인을 가장 많이 내는 2사 주자 1루에서는 어떨까요?(가장 기본적인 작전 패턴은 무사 때 희생번트, 1아웃에서 치고 달리기, 2아웃에서 도루입니다) 살면 2사 주자 2루가 되니 0.145점을 더 얻고, 죽으면 0.390점을 잃어 손익분기점은 72.9%가 됩니다. 무사 1루 때보다 더 확신이 있을 때만 도루 사인을 내야 하는 겁니다. 기대득점표가 있으면 이런 식으로 주자가 뛸 수 있는 모든 상황에서 손익분기점이 얼마나 되는지 구할 수 있습니다.
좀 더 깊이 들어가면 발 빠른 주자가 몇 점이나 더 보태주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똑같은 단타에도 어떤 주자는 1루에서 3루까지 뛰는 반면 다른 주자는 2루에서 멈출 테니 말입니다. ‘발야구’ 팬들에게는 애석하게도 타자가 빠른 발로 만들어내는 추가 점수는 한 시즌 동안 합해도 10점을 넘기기가 어렵습니다.
○ 마!
그렇다고 발 빠른 게 아무 보탬이 안 되는 건 아닙니다. 해설자들은 “발 빠른 주자는 수비수를 흔들어 타자를 돕는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맞습니다. 일단 주자가 1루에 서 있는 것 자체가 타자에게 도움이 됩니다. 최근 3년 동안 평균 타율은 0.272였습니다. 무사에 1루 주자가 있을 때는 이 수치가 0.296으로 올라가고, OPS(출루율+장타력)도 0.753에서 0.791로 오릅니다.
발 빠른 주자들은 더했습니다. 최근 3년 동안 도루가 가장 많은 선수 20명이 무사에 1루 주자로 나가 있을 때 타율은 0.319로 더 올랐습니다. OPS도 0.840으로 올랐습니다. 혹시 유독 잘 치는 타자들만 타석에 있었던 건 아닐까요? 이들이 주자로 있을 때 한 타석이라도 들어선 타자 225명을 따로 뽑아 보면 타율 0.274(OPS 0.757)로 평균과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때로는 뛰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 역시 발 빠른 주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상대 배터리는 그가 1루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흔들리고 있으니 말입니다.
황규인 기자 페이스북 fb.com/bigkin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