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민경]샤넬백보다 육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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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 여성동아 편집장
김민경 여성동아 편집장
여성동아 4월호의 표지모델은 방송인 현영 씨와 네 살 난 딸 다인이다. 어느 모델보다 쉽지 않은 촬영이었지만 표지에 나온 다인이는 내 딸이 아니라도 눈에 넣고 싶을 만큼 예쁘다! 여성동아의 표지에 ‘가족’이 등장한 건 1930년대 여성동아의 이름이 ‘신가정’이던 시절 이후 처음이 아닌가 싶다. 세계적으로도 오랫동안 여성지 표지 모델의 이미지는 ‘일하는 미혼 여성’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육아가 스타의 조건이다. 불황이 장기화하고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육아가 하나의 ‘꿈’이 됐기 때문이다. 출근길에 아이 맡기러 뛰어다니고 얻어온 옷을 입은 딸의 유치원비를 걱정하는 그런 육아 말고, 아이와 자연 속에서 놀고 요리하고 여행하는 그런 육아 말이다. TV 육아 프로그램은 연예인이 아이 키우는 모습을 보여주는 다큐가 아니라 상류층의 여유 있는 삶을 연출한 ‘힐링 예능’이다. 이 같은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 대표적인 명품 브랜드 샤넬이 올 초 내놓은 광고다. 샤넬도 처음으로 엄마와 ‘아이’가 함께 포즈를 취한 광고를 공개했다(사진 속에 샤넬 백은 보이지 않는다). 미래가 불안정한 젊은 여성층의 소비력이 한계에 이르자 ‘아이와 함께 여행 다니는 멋진 엄마’로 고객층을 확대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현영 씨와 딸의 사진이 ‘핫’ 한 표지가 된 것도 이 같은 흐름을 반영했기 때문이다.

다이아몬드 결혼반지로 유명한 또 다른 명품 브랜드 ‘티파니’는 최근 동성 커플의 모습에 ‘결혼해주시겠어요(Will you?)’란 문구를 넣은 광고와 반지를 내놓아 큰 화제가 됐다. 이성 사이의 결혼이 줄어들자 동성의 혼수 시장을 노린 것이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광고기획자 조엘 킴벡 씨는 “미국에서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는 주가 늘어나는 것이 소비 진작을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결혼의 소비 유발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특히 고소득 동성 커플이 많기 때문에 고급 브랜드들이 이들을 모시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 덕분인지 우연인지 동성 결혼이 늘면서 뉴욕은 최고의 호황”이라고 전했다.

요즘 남성 패션지에 여성의 눈에는 지나치게 남성적이거나 과하게 꾸민 남성이 많이 등장하는 것도 남성 동성애자의 시선이 중요해졌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 간통죄가 위헌 판결을 받자 콘돔 생산업체와 주류업체, 제약업체, 등산복 등 의류업체 등이 수혜 업종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농담 같았지만 글로벌 불륜소개업체가 ‘이제 당신에게 필요한 만족을 합법적으로 얻으세요’란 문구를 내걸고 한국 영업을 재개한 것을 보니 일시적 해프닝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는 간통죄 폐지가 40, 50대의 두툼한 지갑을 열었다는 ‘분석’도 나올지 모른다. 이미 많은 기업에서 ‘그루밍족(패션과 미용에 투자하는 남성)’과 ‘어번 그래니(자기 꾸미기에 열심인 도시의 50, 60대 여성)’가 가장 강력한 소비층이 될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가. 그리하여 호황을 누린다면 우리는 행복해질까.

나는 궁금하다. 끝없이 유행을 만들고 소비를 자극하는 돈의 욕망이 육아에 대한 꿈을 낳고 동성애자들의 결혼 ‘예식’을 부추기고 간통죄를 시대착오적이라고 판결하도록 하는 것일까. 아니면 가치관의 변화에 맞춰 새로운 유행이 등장하는 것일까. 생각의 변화 역시 새 상품인 것은 아닐까. 아마도 서로 영향을 미치겠지만 사람의 마음을 먼저 읽는 쪽은 ‘돈’이고 언제나 설득당하는 쪽은 우리가 될까 봐 좀 두렵다.

김민경 여성동아 편집장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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