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문명]50대가 바라는 것

  • 동아일보

허문명 오피니언팀장
허문명 오피니언팀장
세대 대결이 심했던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만든 1등 공신은 50대의 몰표였다. 투표율은 전 연령대에서 최고(89.9%)였고 과반 이상(61%)이 지지표를 던졌다. 당시 언론들은 50대의 지지를 이끈 잣대가 ‘현실감각’이었다고 분석했다. 비현실적인 복지공약을 내세운 야당 후보보다는 ‘중산층 70% 재건’ 같은 슬로건을 내세운 박 대통령이 사회생활을 할 만큼 한 50대에게 먹혔다는 것이다. 이런 50대가 요즘 대통령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있다는 것이 확연하게 감지된다.

연말 모임에 가면 ‘정윤회’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한 50대 대기업 임원의 말이다.

“지금 우리 세대는 현직에서 리더 역할을 하는 사람이 많다. 한국 사회 특유의 가부장 문화와 기업 내 오너 구조에 익숙한 우리 입장에서 청와대 실세가 누구냐 하는 문제에는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다. 청와대 문건을 ‘찌라시’라고 하지만 신문 보도들을 놓고 추정해보면 그 나름대로 그림이 그려진다. 픽션과 논픽션이 함께 어우러지면서 말이다. 현직 비서실장이 오히려 밀린다는 느낌까지 들게 만드는 정윤회 씨는 최대 관심 인물이다. 한국 남자들에겐 2인자에 대한 로망이란 게 있는데 정 씨를 보는 눈에도 로망과 질투심이 섞여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문건의 유출 경위, 진위에 대한 관심보다는 이런 상황을 만든 대통령의 난맥 인사, 비선 선호, 폐쇄적인 국정 운영에 대한 불만과 안타까움으로 결론이 난다. 지난 대선에서 박 대통령을 찍었다는 50대들의 말을 옮겨본다.

“대통령은 일개 비서관들이 권력을 휘두르겠냐 하지만 조직생활 경험이 많은 우리로서는 실세란 게 직위가 아니라 절대 권력자의 눈과 귀를 잡고 있는 ‘거리’라는 것을 체험적으로 알고 있다. 측근? 둘 수도 있다. 하지만 실력이나 ‘깜’이 안 되는 사람들이 너무 가깝게 포진하고 있는 것 같아 실망스럽다는 거다.”

“50대의 바람은 딴 게 아니다. 먹고사는 게 좀 나아졌으면 좋겠고 한국이 미국 유럽에 뒤지지 않는 선진국으로 세련되게 거듭났으면 하는 거다. 지금 50대들은 노후걱정, 먹고살 걱정에 하루하루가 힘겹고 막막하다. 경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점에서 대통령과 인식이 같다. 그런데 대통령은 비선 실세 의혹 논란을 무시하고 경제 살리기로 가자는 쪽이고, 우리는 의혹을 잠재우지 않고서는 경제 살리기도 어렵다고 생각한다. 바로 이 지점이 대통령과 여론이 갈라지는 대목이다.”

“정권에 대한 기대는 많이 접었지만 아직 포기하지는 않았다. 상황이 이 정도 됐으면 ‘국민 여러분께 심려 끼쳐 죄송하다’ 한마디 하면 국민 마음도 많이 풀릴 텐데 국가원수가 비속어까지 쓰면서 ‘청와대 문건=찌라시’라고 하니 맥이 탁 풀리는 느낌이었다.”

결국 주변 사람들에 대한 혁신만이 답이라는 여론이 높았다.

“대통령이 폐쇄적인 리더십을 가졌다는 것을 이제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사람의 성격이나 스타일은 잘 바뀌지 않는다. 대통령이 스스로 바뀌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니 주변 사람들을 바꿔야 한다. 무엇보다 비서실을 개편해야 한다. 김기춘 실장은 혁신에 대한 열망이 강한 50대에게 설득력이 떨어지는 인물이다.”

“정치를 잘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역대 대통령 중 누구보다 깨끗한 분 아닌가. 재벌에 신세 안 진 최초의 대통령이다. 얼마나 자유롭게 정치를 할 수 있는 상황인가. 이번 기회를 통해 물갈이하고 누가 봐도 잘된 인사라는 공감대를 얻으면 지지도는 다시 높아질 것이다. 깨끗한 물갈이, 이것이야말로 50대가 대통령에게 바라는 최소한의 주문이다.”

허문명 오피니언팀장 angelhuh@donga.com
#50대#대기업#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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