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늘린 복지비용 대느라… “돈 없어 길도 못넓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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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혁신 '골든타임']
<4>지방자치제 기초부터 다시 쌓자/풀뿌리를 튼실하게

“수십 년 동안 도로 개통 민원을 넣었지만 사업비가 없다는 답변만 돌아옵니다.”

대구 남구 이천동 주민들은 미군부대인 캠프 헨리 옆 골목만 보면 답답하다. 20여 년 동안 도로가 나지 않아 불편한 데다 주거 환경도 좀처럼 개선되지 않기 때문. 이곳은 1980년대 도시 확장에 따른 도로(폭 8m, 길이 200m) 개통 계획이 있었지만 아직도 추진되지 않고 있다. 재정 여건이 어려운 남구가 도시 기반 확충 사업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어서다. 남구에는 이런 도로 계획이 4개 구간, 600m다.

남구는 자체 투자 사업을 벌일 여력이 거의 없다. 대구 남구는 전국 지자체 가운데 자체사업예산이 7.7%로 가장 낮다. 재정자립도 역시 10.12%로 최하위 수준이다. 올해 전체 예산 2231여억 원 중 57%(1272억여 원)는 기초노령연금이나 영·유아 보육료, 가정양육수당, 기초생활보장 등 사회복지예산으로 쓰인다. 공공질서 및 안전을 비롯해 환경보호, 교육, 문화관광 등 이것저것 빼고 보면 가용예산은 10%(220억여 원)도 채 되지 않는 실정이다.

전북 부안군은 347억여 원을 들여 조성한 부안자연생태공원 내에 쓰지 않는 시설 한 곳을 청소년수련원으로 꾸미고 싶지만 비용 10억 원을 마련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 부안군의 자체 사업 예산 비중은 12.91%다.

○ 복지사업 확대에 손발 묶인 지자체

국비와 지방비를 일정 비율로 분담하는 복지사업은 지방 재정난의 주범이다. 기초연금이 도입되면서 지방자치단체들이 감당해야 하는 예산은 더욱 늘어났다. 올해 한 해에만 1조2600억 원, 내년에는 2조5300억 원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전국시도지사협의회에 따르면 2007년 32조 원(지방예산의 약 28%)이었던 국고보조사업은 올해 61조 원(37%)으로 급증했다. 반면 국비 보조율은 2007년 68.4%에서 올해 61.8%로 떨어졌다. 최근 복지사업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매칭 비용을 대느라 자체 사업을 포기하는 지자체가 속출하고 있다. 법령상 지자체는 국고보조사업을 인건비보다 먼저 예산에 편성해야만 한다.

세출은 늘었지만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마련할 수 있는 세입은 한정돼 있다. 부동산 경기가 침체하면서 지방세의 주요 세원인 취득세와 재산세 수입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임승빈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방세가 재산세와 취득세 같은 부동산에 기반을 두다 보니 경기에 민감하고, 난개발이 발생한다”며 “개인과 기업의 활동을 장려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근본적으로 지방세를 수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중앙정부가 경기부양 차원에서 결정한 지방세 감면도 세수 부족을 부추기고 있다. 2007년 18.3% 수준이던 지방세 감면율이 2012년에는 22.2%까지 높아져 무려 15조 원이 넘어섰다. 전체 세입 가운데 국세와 지방세의 배분 비중은 8 대 2에 머물고 있다.

○ 자치조직권 없어 조직은 경직

스스로 살림을 꾸려나갈 돈이 부족한 것 외에도 살림을 꾸려나갈 아무런 권한이 없다는 것도 지방자치의 성숙을 가로막는 요인이다. 소방담당과장을 예로 들면, 부산시는 지방소방준감, 대구시는 지방소방정, 세종시는 지방소방령으로 지자체 종류와 인구 규모별로 26개 유형으로 세분화되어 있다. 인구 1000만 도시인 서울시는 복지, 경제문화, 교통문화 부문의 부시장 자리를 만들고 도시재개발청을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중앙정부의 허락을 얻지 못해 실패했다.

자치단체장이 바뀌면 ‘내 사람 심기’나 ‘예산 나눠주기’가 횡행해 무작정 풀어 줄 수는 없다는 것이 중앙정부의 설명이다. 김홍환 전국시도지사협의회 연구위원은 “선진국에 비해 조직과 기구에 대한 과도한 규제를 하고 있어 주민의 요구를 즉각 반영하기 힘든 구조”라며 “그동안 지방자치에 대한 기대가 높아진 만큼 권한 이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정책 결정과정에서는 배제

올해 7월부터 시행 중인 만 65세 이상 노인 중 소득 하위 70%에 최대 20만 원까지 지급하는 기초연금법은 도입되기까지 1년간 보건복지부와 청와대, 입법예고 이후에는 여야 간 치열한 합의 과정을 거쳤다. 그러나 어느 단계에서도 지자체 의견이 반영될 기회는 없었다. 기초연금의 30%는 지방비로 부담해야 하는데도 그랬다.

이는 중앙정부 정책결정과정에 지방의 의견을 반영하는 제도적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지자체가 예산을 부담해야 하는 국가사업은 2012년부터 지방재정부담심의위원회를 거치도록 했다. 지난해 말까지 모두 다섯 차례 열렸지만 국비와 지방비가 결부되는 어떤 복지사업에도 제동을 걸지 못했다. 심의 결과에 강제성이 없고 지자체에서 먼저 회의 개최를 요구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중앙부처가 지자체 재정 부담을 수반하는 법령 제정 및 개정 시 지방재정영향 평가를 안전행정부 장관에게 제출하도록 지방재정법을 개정하는 등 제도 개선에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은 미흡하다는 평가다.

지자체가 각종 복지정책의 집행상의 문제를 충분히 검토하지 못해 각종 부작용을 낳고 있음에도 이를 앞 다퉈 도입한 정치권을 견제할 장치는 없다. 임 교수는 “법안을 발의하는 국회의원이 광역단체장이나 기초단체장 협의회 등의 의견을 수렴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경임 woohaha@donga.com·장영훈 기자
#복지비용#지방자치제#풀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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