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방형남]국방-외교장관의 비겁한 보신주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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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형남 논설위원
방형남 논설위원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싸워서 이기는 전투형 군대’를 강조해 국민의 신뢰가 높았다. 그 덕에 이명박 정부 사람이지만 박근혜 정부에서도 계속 기용되는 영예를 누렸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다음 달인 2010년 12월 시작된 그의 국방부 장관 재임 3년 6개월은 군사적 위기의 연속이었다. 그는 실제 상황으로 다가온 북한의 도발에 맞서기 위해 대대 단위 이하 ‘창끝 부대’의 전투력 강화에 집중했다.

그런 사연 때문에 22사단 총기난사 사건에 대한 김 장관의 대응은 실망을 넘어 분노마저 느끼게 한다. 최전방의 일반전초(GOP)와 감시초소(GP)를 지키는 부대는 ‘창끝의 끝’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서 우리 병사의 총기난사로 5명이 사망하고 9명이 다치는 참사가 일어났다. 창끝 부대 전투력 강화를 외친 김 장관에게는 개인적으로도 참담한 실패 사례다.

복무 중인 병사들은 동료가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몰라 두려워하는 상황이 됐다. 입대를 앞둔 젊은이들과 부모들이 어떻게 하면 GOP 근무를 피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면 보통 일이 아니다. 총기난사 사건은 잊을 만하면 터진다.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군이 북한의 도발에 제대로 대처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어렵다.

사건 발생 하루 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이 발표한 사과문의 주체는 장관이 아닌 대변인이었다. 장관이 국민 앞에 직접 나와 사과하면 권위에 손상이라도 입는단 말인가. 김 장관은 그제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해 뒤늦게 사과했다. 나흘 만에 국회에 불려나와 머리를 숙였지만 국방위원회 소속 일부 국회의원에게 한 것이지 대(對)국민 사과는 아니다. 그는 2011년 병사 4명이 사망한 강화도 해병대 해안소초 총기난사 사건 때도 장관이었다.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겠다던 당시 다짐을 실천하지 못한 책임도 크다. 대변인 뒤에 숨을 일이 아니다.

총기난사 사건으로 군 생활 부적응 문제가 조명되고 있지만 관심병사 수보다 더 심각한 것은 군이 현재 시행하고 있는 대책이 효과가 없다는 사실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년 전 실시한 ‘군복무 부적응자 인권 상황 및 관리에 대한 실태조사’에서 관심병사제가 부적응 병사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를 묻는 질문에 전체 병사의 55.9%가 효과적이지 않다고 응답했다. 당사자인 부적응 집단 병사는 71.5%가 효과적이지 않다고 답변했다. 조사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군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병사들을 노출시키는 관심병사제의 역효과에 대한 반감이 심각하다”고 전했다. 관심병사제 폐지를 포함해 부적응자 대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중대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장관이 대변인 뒤에 숨는 습성은 외교부의 경우도 비슷하다. 일본이 고노 담화 검증 결과를 발표한 20일 오후 한국 언론과 여론은 들끓었다. 그러나 외교부는 대변인 명의의 성명을 낸 게 고작이다. 일본은 검증 결과 발표 당일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정부 입장을 국민에게 밝혔다. 기시다 후미오 외상도 24일 기자회견을 열어 “고노 담화는 한일 양국 정부가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를 위해 노력한 결과라는 점이 검증에 의해 밝혀졌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침묵으로 닷새를 보내다 그제 겨우 출입기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언론이 그의 발언을 전하지 않아 국민은 여전히 외교부 장관의 일본 대응전략을 모른다.

잘못된 일에 대한 사과나 설명에 대변인을 내보내고 장관이 얼굴을 비치지 않는 것은 비겁한 보신주의(保身主義)다. 장관들은 잘못이 있으면 국민에게 사과하고 설명해야 할 의무가 있다. 국민은 외면하고 대통령만 바라보는 장관이 늘어나서는 박근혜 정부가 성공하기 어렵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22사단#총기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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