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띠해 소비트렌드 ‘S·N·A·K·E 컨슈머’<上> “더 싸고 더 좋은 제품 찾아라”

동아일보 입력 2013-01-15 03:00수정 2014-02-12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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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구族이 유통 패턴을 뒤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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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장인 이영석 씨(38)는 최근 아기용 카시트를 구입하느라 해외 온라인 쇼핑몰들을 전전했다. 유명 브랜드 제품을 사주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국내 판매가는 지나치게 비쌌다. 》
육아 사이트에서 예비 부모들로부터 일본 브랜드 제품을 추천받고 일본 현지 사이트를 집중적으로 뒤졌다. 결국 미국의 사이트에서 최저가 상품을 발견해 구입했다. 퇴근 후 짬짬이 검색하느라 ‘쇼핑’엔 꼬박 사흘이 걸렸다. 그러나 ‘전 세계에서 가장 싸게 샀을 것’이라는 생각에 뿌듯한 느낌이 들었다.

최근 국내 소비자들의 소비 행태가 전통적인 소비자 영역을 뛰어넘는 단계로 진화하고 있다. 이들은 손품, 발품을 들여 원하는 제품을 국내외를 통틀어 가장 싸게 구입하고 제품 생산시설을 방문하는 등 ‘감시자’ 노릇도 한다. 한 유통업체 관계자는 “유통업체 바이어가 하던 역할까지 소비자들이 하고 있는 셈”이라고 전했다. 이 같은 움직임에는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통해 해외 상품을 싸게 구입할 수 있게 된 점과 한국형 컨슈머리포트가 발간되면서 소비자 관련 이슈가 부각된 점이 영향을 미쳤다.

동아일보는 진화한 새로운 소비자들을 ‘스네이크(SNAKE) 컨슈머’로 정의했다. 뱀의 해를 맞아 뱀처럼 영리하고(Smart), 서로 연대하며(Network), 적극적이고(Active), 경제적인(Economical) 한국형(Korean style) 소비자라는 의미다.

○ 쇼핑을 아웃소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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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박세연 씨(28)는 큰맘 먹고 교외 아웃렛을 찾을 때마다 원하는 사이즈가 다 팔리고 없어 아쉬울 때가 많았다. 그러다 얼마 전 인터넷의 한 아웃렛 쇼핑 대행 사이트를 통해 겨울 코트를 손에 넣는 데 성공했다. 박 씨는 “백화점에서는 100만 원을 호가하는 브랜드인데 30만 원대에 살 수 있었다”며 “대행업체에 주는 수수료와 배송비를 내기는 했지만 이동비용과 시간을 감안하면 남는 장사였다”라고 말했다.

최근 국내에도 교외형 프리미엄 아웃렛이 늘어나면서 유명 상품이나 고가 브랜드 제품을 싸게 살 기회가 많아졌다. 하지만 인기 상품은 재고가 적고 시간적 물리적 제약 탓에 아웃렛을 자주 찾기는 쉽지 않다.

아웃렛에서 싼값에 물건을 꼭 사야 직성이 풀리는 소비자들을 겨냥해 최근 신종 직업이 등장했다. ‘아웃렛 상품 구매대행업’이다. 초기에는 카페나 블로그 등을 통해 알음알음 이뤄졌으나 최근에는 사업자등록을 하고 전문적으로 구매대행을 해주는 업체들도 생겼다. 개인들은 온라인 카페나 블로그 등을 통해 신청을 받은 뒤 건당 4000∼5000원 정도의 구매대행비와 택배비를 받고 물건을 대신 구입한 뒤 부쳐준다. ‘기업형’ 구매대행업체는 경기 용인시의 한섬 아웃렛, 경기 의왕시의 제일모직 아웃렛, 롯데나 신세계의 여주, 파주아웃렛 등을 대상으로 대신 물건을 구입해주며 보통 아웃렛 판매가의 10∼15%가량을 수수료로 받는다.

아웃렛 업계의 한 관계자는 “아웃렛 사업은 소매가 원칙인데 업자가 중간에 끼면서 재고가 빨리 소진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다른 고객들에게 피해가 되지 않게 관리해야 할 지경”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젊은층을 중심으로 여행객을 통해 면세점 대리구매를 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화장품, 가방 등을 값싸게 구입하는 편법적인 ‘세(稅)테크’인 셈이다. 면세점에서 사면 국내 일반 매장보다 20∼30% 싸게 물건을 손에 넣을 수 있다. 업무 특성상 해외출장이 잦은 이들은 아예 포털사이트에 ‘면세점 구매대행’이라는 카페를 만들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도 있다.

○ 해외 직접구매도 급증

2009년 8월 서비스를 시작한 국내 최대 규모의 해외배송대행업체 몰테일은 약 2년 만에 이용건수가 12배 가까이로 늘어났다. 해외배송대행이란 소비자가 해외 쇼핑몰에서 구매한 물건을 국내로 배송하는 것을 돕는 서비스다. 해외 쇼핑몰들이 한국으로 국제 배송을 하지 않을 경우 국내 소비자는 배송대행업체들이 운영하는 현지 물류센터를 주소지로 정해 주문장을 낸다. 그러면 대행업체는 받은 물건의 무게와 부피에 따라 배송비를 책정해 한국의 집주소로 보내준다.

현재 몰테일뿐 아니라 한진이 운영하는 이하넥스, 미국 전문 배송대행업체인 포스트베이 등의 업체가 성업 중이다. 롯데미래전략센터는 최근 해외 직접구매 행태가 올해의 유통 트렌드 중 하나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해외배송업체가 비약적으로 성장한 것도 ‘스네이크 컨슈머’ 덕분이다. 국내 유통업체들이 정식으로 수입해 마진을 붙인 제품의 가격과 구색이 국내 소비자를 만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부 이정신 씨(38)는 “특히 미국 사이트들은 할인행사를 많이 해 국내 판매가보다 70% 가까이 싸게 살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해외 직접구매를 즐기는 이른바 ‘직구(직접구매)족’들은 기존 유통업체에도 적잖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의 유명 아동복 브랜드 ‘짐보리’가 한국 소비자들이 사이트를 통해 구매하는 것을 막았다가 강력한 반발에 다시 서비스를 재개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롯데쇼핑은 국내에 짐보리를 독점 수입하면서 한국에서 접속하는 계정에선 온라인 쇼핑을 할 수 없도록 차단했다. 그러자 미국 홈페이지에서 직접 구매하던 소비자들이 국내 판매가가 지나치게 비싸다고 강력하게 반발했고 접속 차단을 풀 수밖에 없었다.

‘직구족’이 늘면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도 속속 개발되고 있다. 쉐란은 지난해 말 ‘크리겟’이라는 사이트를 통해 해외 쇼핑몰의 가격을 비교할 수 있는 서비스를 선보였다. 최세영 쉐란 대표는 “미국과 유럽의 유명 온라인 쇼핑몰들에서 판매하는 제품의 가격을 비교하고 리워드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내 최초의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해외 직접구매가 늘어난 데는 FTA의 영향으로 관세 및 부가세가 인하 또는 철폐된 것이 큰 역할을 했다. 지난해 3월 한미 FTA가 발효되면서 미국 특송 화물의 면세 기준은 ‘상품가격과 배송비를 합쳐 15만 원 이하’에서 ‘상품 가격 기준 200달러 이하’로 상향 조정됐다.

김나경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한국 소비자들은 인터넷에 익숙한 데다 적극적으로 목적 지향적 소비를 하는 경향을 갖고 있다”며 “특히 불황이 이어지면서 같은 비용을 들였을 때 최상의 가치를 찾으려는 경향이 짙어져 새로운 소비자 트렌드가 등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현진·박선희·염희진 기자 bright@donga.com

#스네이크슈머#아웃소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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