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드라마캐릭터열전]‘해맑은 개매너’로 하이킥 날리는 윤계상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27일 11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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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을 믿어서가 아니다. 울면서 말하는 것보다 웃으면서 말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으려 할뿐이다.

그래서 그는 결코 '허당'이 아니다. 그런데 부드럽게 미소 띤 얼굴로 회피하고 싶은 사실을 분명하게 말하는 그와 마주한 사람들은 당혹스러움에 빠진다. 그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라는 황당한 시선으로 해맑은 표정의 그를 쳐다볼 뿐이다.

"정말 세상에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MBC 시트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에서 '엉뚱한 웃음'을 유발하는 윤계상(윤계상 분)은 그렇게 상식 혹은 교양이라 생각했으나 어쩌면 고정관념이나 편견에 지나지 않는 관습적 사고에 균열을 일으키면서 우리 사회를 향해 '하이킥'을 날리는 인물이다.

잘 생긴 외모와 부드러운 미소 그리고 사회적 약자를 배려할 줄 아는 심성까지 두루 갖춘, 그래서 바라만 봐도 훈훈함을 주는 젊은 의사 윤계상은 엄밀히 따지면 시트콤에 어울리는 캐릭터라 하기 어렵다.

과장된 언행으로 때로는 익살스럽게 또는 가슴 아프게 세태를 풍자하는 시트콤에서 상식과 원칙에 입각한 언행으로 일관하는 윤계상 같은 캐릭터는 존재감을 드러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정확하게, 하지만 상대방을 배려하기 위해 친절하게 웃으며 이야기하는 순간 터지는 웃음은 우리 사회의 관습적 사고에 대한 성찰을 유도한다. 시트콤의 관습적인 캐릭터에서 벗어난 윤계상은 이렇게 기존 시트콤과 다른 방식으로 몰상식과 편법이 난무하는 세상에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은 무한경쟁 구도에서 낙오하거나 사회적으로 소외된 패자들의 사연을 다룬 시트콤이다.

절친한 친구에게 사기를 당해 하루아침에 채권업자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 50대 가장 안내상(안내상 분), 학자금 대출 빚에 시달리며 비정규직 아르바이트도 마다하지 않고 일자리를 찾아다니는 20대 여성 백진희(백진희 분), 붙박이 고시생으로 몇 년 째 9급 공무원 준비만 하는 30대 백수 남성 고영욱(고영욱 분)….

이처럼 주류에서 비주류로 전락하거나 주류 사회로 진입할 기회조차 원천봉쇄 당한 존재들의 사연이 넘쳐나는 시트콤에서 윤계상은 주류와 비주류를 연결시켜주는 통로 역할을 한다. 지하 땅굴에 갇혀버린 사회적 약자나 낙오자의 사연들이 일상생활의 맥락에서는 별로 특별하지 않은 윤계상에 의해 지상의 현실 세계로 끌어올려지기 때문이다.

윤계상은 원칙과 상식이 왜곡된 우리 사회에서 상당히 독특한 색깔을 지닌 캐릭터이다. 충분한 성찰 없이 자기주장만 펼치면서 상대방의 이야기를 묵살하고, 직시해야 할 치부나 상처를 외면하며,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찾기 어려운 현실에서 원칙과 상식에 입각한 그의 언행은 단순히 웃음을 유발하는 기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는 그릇된 상식과 편법이 난무하는 현실에 대한 사회적 성찰을 요구하는 낮은 목소리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의 윤계상은 소모적인 웃음이 아니라 풍자와 해학이라는 건강한 웃음을 유발하기 위해 존재하는 캐릭터이다.

윤계상은 무한 경쟁이 일상화되면서 황폐해진 인간관계를 각성시키는 인물이다. 선후배이자 동료들을 이겨야만 생존이 보장되는 비참한 현실에서 소통은 어려워지고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자기주장만 난무하는 현실이 윤계상의 엉뚱한 행동에 의해 풍자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윤계상은 채권업자를 피해 가족과 함께 지방을 전전하던 누나 윤유선(윤유선 분)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찾아간 곳에서 서로를 탓하며 말싸움을 벌이는 누나 가족을 보고 놀란다.

난장판이 된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그는 매형이 몰고 다니던 폐차 직전의 봉고차에서 이벤트 도구인 '도끼 가발'을 찾아내 그것을 써야만 발언권이 있다는 규칙을 정하고 누나 가족의 이야기를 듣는다.

'도끼 가발'을 쓰고 각자의 입장을 말하는 누나 가족의 모습과 차분하게 상황을 정리하는 윤계상의 모습이 대비되면서 발생하는 웃음은 소통 부재의 슬픈 현실을 풍자한다.

또한 윤계상은 빚을 갚는데 필요한 자금과 조카 안수정(크리스탈 분)의 유학비를 빌려주는 것은 물론 동생 윤지석(서지석 분)과 함께 방을 사용했으면 좋겠다는 매형의 부탁에 일단 생각해보겠다며 재킷을 머리에 뒤집어쓴 채 고민에 잠기는 엉뚱한 행동을 스스럼없이 하는 인물이다.

처남과 돈독한 관계라 생각하는 매형 안내상의 기대감과 달리 윤계상은 냉정하면서도 다정한 말투로 매형의 부탁을 거절함으로써 예상치 못한 웃음을 유발한다.

재킷을 뒤집어쓰고 고민하는 윤계상의 평범하지 않은 행동은 그 자체로 우스꽝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심사숙고하는 그의 모습을 통해 성찰의 시간을 갖지 못하는 우리 사회를 잠시라도 돌아볼 수 있다면, 그 웃음의 의미는 이미 완성된 것과 마찬가지이다.

한편 인간보다 물질이 앞서고 상식과 원칙이 왜곡된 현실에서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지향하는 평범한 사람들은 종종 웃음거리가 되기도 한다. 대학병원에서 돈 없는 환자를 위해 무단으로 수술하다가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어 자의반 타의반 보건소로 자리를 옮긴 윤계상은 바로 그런 현실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오래된 친구 혹은 편안한 이웃 같은 윤계상이지만, 직면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부드러운 미소로 이야기할 때마다 상대방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대장에 생긴 용종 제거 시술을 앞두고 겁에 질려 있는 매형 안내상을 안심시키기 위해 간단한 시술이라고 말하다가 심하면 수술을 해야 하며 잘못하면 수혈을 받아야 한다고 웃으며 설명하는 그의 친절이 매형에게는 악의적으로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심각한 상황에서 친절한 미소로 최선을 다 하는 그의 행동은 여성을 아연 실색하게 만들기도 한다. 자신이 이용한 화장실로 들어가려는 것을 저지하는 백진희에게 "변에서 냄새가 나는 건 당연한 생리 현상"이라며 아무렇지 않게 설명하고, 광견병에 걸린 줄 알고 걱정하는 박하선(박하선 분)에게 광견병 증상에 대해 친절하게 웃으며 알려주는 윤계상의 행동은 여성의 입장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하지만 그는 상대방이 심각하거나 부끄럽게 생각하는 상황에서도 "울면서 말하는 것보다 웃으면서 말하는 편이 낫지 않나요?"라고 되묻는다. 백진희가 '해맑은 개매너'라고 부를 정도로 천진난만하면서도 거짓 없는 그의 행동이 이상하게 보이는 것은 우리 사회가 진심 어린 친절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좋은 의미로 베푸는 친절조차 악의적으로 대하는 사회 풍토가 지극히 평범한 존재인 윤계상을 비현실적인 캐릭터로 전이시키면서 웃음을 유발하는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시트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의 자상하면서도 낭만적인 '보건의사 윤계상'은 일정 부분 로맨틱코미디 '최고의 사랑'에서 바라만 봐도 훈훈한 느낌을 주는 '젊은 한의사 윤필주'의 잔상에 빚지고 있는 캐릭터이다.

'배우 윤계상'의 전작에서 출발한 것 같은 '보건의사 윤계상'은 여전히 여성들에게 인기 많은 매력적인 남성이다. 동시에 그는 세상 아날로그 정서에 어우러지는 따뜻한 미소, 사회적 약자를 배려할 줄 아는 정의감, 그러면서도 "잘 생겼다"라는 의미의 르완다어 '아랏샤라무니에'라는 별명에 부끄러워하는 남성이기도 하다.

특별히 과장되거나 과잉된 행동 없이 웃음을 유발하는 윤계상은 분명 기존 시트콤에서 볼 수 없었던 특별한 색깔의 캐릭터이다. 2G폰 사용을 강제 종료하려는 통신사의 처사에 항의하는 시위 현장에 동참하고, 독거노인을 위한 복지예산 삭감에 항의하기 위해 1인 시위에 나설 정도로 뛰어난 인권감수성으로 웃음을 유발하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상식과 원칙에 입각하여 세상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의 윤계상은 따뜻하고 건강한 웃음을 선사하는 존재가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융통성 없이 세상 물정 모르고 살아가는 존재가 될 수도 있다.

'보건의사 윤계상'이 어떤 캐릭터로 각인되느냐 여부는 전적으로 '배우 윤계상'에게 달려 있다. 패자들의 역습을 지원하기 위해 상식 혹은 교양이라 생각하는 관습적 사고를 향해 '하이킥'을 날릴 윤계상을 기대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드라마평론가 drama@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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