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한다고 맞고, 말 안한다고 맞고…” 육군 이병 “선임병 괴롭힘 못견뎌” 외박 나와 자살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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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한다고 치고, 대답하지 않는다고 차고, 눈 뜬다고 때리고 눈 감는다고 두들겨 팼다.”

외박을 나왔다가 광주의 한 중학교에서 자살한 육군 A사단 김모 이병(20)의 중고교 동창생, 대학 동기 등 친구 7명이 주장한 내용 중 일부다. 이들은 김 이병이 두 차례 외박을 나왔을 때 한 통화에서 “부대에서 매일 뺨을 맞고 있다”고 하소연했던 것을 진술서로 작성해 A사단 헌병대에 건넸다. 김 이병은 16일 모교인 중학교 숙직실 앞에서 군화 줄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현장에서는 ‘뺨 맞는 날’이라는 글이 적힌 B5 크기 종이 2장이 떨어져 있었다.

18일 A사단에 따르면 김 이병은 7월 19일 A사단 신병교육대에 입대를 한 뒤 다음 달 26일 신병교육대를 퇴소해 A사단 산하 부대에 배치됐다. 이후 2주의 적응기간을 거쳐 9월 5일경 1중대에 배치됐다.

김 이병의 유족은 “1중대 배치 이후부터 매일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고참들은 김 이병을 취침시간에 불러내 때리거나 폐쇄회로(CC)TV 사각지대에서 지속적으로 폭행했다고 주장했다. 상처가 남지 않도록 뺨을 때렸고 모멸감을 주는 폭언도 이어졌다는 주장이다. 특히 김 이병의 같은 대학 여자 동기 등이 면회를 온 이후 고참들이 ‘그 여자를 갖고 싶다’며 더 심하게 폭행했다는 것이다.

김 이병은 이달 1일 첫 외박을 나왔다가 귀대한 뒤 아버지(49)에게 전화해 “매일 맞고 혼난다. 자살하고 싶다. 고참이 불을 꺼놓고 때린다”고 말했다. 김 이병의 아버지는 중대장에게 전화를 걸어 “아들이 매일 얻어맞고 있다. 오죽하면 면회 오지 말라고 하겠느냐”고 하소연했다. 그러자 3일부터 이틀간 부대원들을 상대로 면담조사가 4차례 이뤄졌다. A사단 관계자는 “면담조사 과정에서 고참 한 명이 가슴을 톡톡 치는 경미한 폭행을 했다고 진술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부모 “軍 책임회피 급급” 軍 “장병 10여명 조사”▼

김 이병은 같은 달 12일경 1중대 보병에서 다른 중대의 행정병으로 배치됐다. 김 이병은 다른 중대 배치 직후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다른 중대에 배치돼 마음이 편하다. 앞으로 군 생활을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웃었다고 한다. B대학 심리상담학과 1학년을 마치고 입대한 김 이병은 부대에서 동료 병사들의 심리상담을 하고 우울증 진단이나 심리치료까지 했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폭행은 이어졌다. 김 이병의 아버지는 “아들이 두 번째 외박을 나오던 날인 이달 15일 밤 친구들과 술을 마시면서 ‘외박 직전 예전 고참에게 뺨을 맞아 얼굴이 퉁퉁 부었다. 안 맞는 날이 이상하다’고 말했다”며 “아들이 더는 탈출구가 없다고 자포자기한 것 같다”고 울먹였다. 그러면서 “1950, 60년대 군대보다 모욕적인 가혹행위가 이뤄진 것 같다. 반드시 진상을 규명하겠다”고도 했다. 유족은 군 수사당국이 정확한 사실을 규명하지 않을 경우 국가인권위원회나 국회 등에 진정할 계획이라고 한다.

A사단 측은 김 이병 유족이나 친구들 주장에 대해 철저히 수사해 진상을 규명할 방침이다. A사단 관계자는 “김 이병 부대원 10여 명을 상대로 가혹행위가 있었는지 등을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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