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받을 곳 막막” 건설불황에 하도급 대금 체불 급증

  • 동아일보

하도급 분쟁조정의 60%가 건설
경기 악화에 2년새 34% 늘어
임금 체불과 달리 규제 사각지대
“인건비라도 보호장치 마련해야”

건축자재 납품업자인 전모 씨(57)는 2024년 3월 경기 광주시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에 철근 기둥을 설치해주기로 계약을 맺었다. 지난해 초 공사를 모두 마쳤지만, 시공비와 인건비로 계약했던 7000만 원이 아닌 1000만 원만 받았다. 구두로 합의했던 것과 달리 더 비싼 공법으로 시공을 한 데다 장비 대여비까지 전 씨가 떠맡아 손해가 컸다. 그는 지방고용노동청 등에 도움을 구했지만 ‘근로자 임금 체불이 아닌 업체 간 계약이라 해결해 줄 수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 전 씨는 “원청업체인 시공사는 나와 계약을 맺은 하청업체에 공사비를 이미 지급했다고 한다”며 “어디서 돈을 받아야 할지 막막하다”고 하소연했다.

건설업 불황이 길어지면서 일한 대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영세 하청업체들이 속출하고 있다. 정부가 연간 2조 원 규모를 돌파한 근로자 임금 체불을 ‘중대범죄’로 규정하며 처벌을 강화하는 것과 달리 ‘하도급 대금 체불’은 규제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건설 불황에 하도급 대금 체불 증가

27일 한국공정거래조정원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건설 분야의 하도급 관련 분쟁 조정은 660건으로, 전체 분쟁 조정(1105건)의 60%를 차지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2년 전(492건)에 비해 34% 증가한 수치다. 조정원은 “건설 경기 악화가 장기간 이어지면서 대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하도급 업체가 늘어난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건설이나 제조업 현장에서는 드러나지 않은 불법 하도급 계약이 여전히 많아 각종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하도급 대금 체불이 발생하고 있다. 현행법에 따르면 발주처 동의 없이 재하도급을 하거나 하청받은 공사 전체를 재하청하면 불법이다. 하지만 지방이나 소규모 건설 현장에서는 공정별로 재하청, 재재하청을 주며 영세 개인사업자와 따로 계약을 맺는 사례가 적지 않다. 건설업체 관계자는 “총공사비가 100억 원 정도인 소규모 건설 현장에서 하도급 대금 체불이 자주 발생한다”며 “하도급을 준 업체와 받은 업체 모두 영세하고, 불법 하도급 사례도 많아 체불된 대금을 받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 “사실상 인건비는 법적 보호장치 강화해야”

이들이 받는 돈은 사실상 ‘인건비’ 성격이 강하지만 도급 계약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근로자처럼 보호를 받기도 쉽지 않다. 하도급 대금 미지급은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를 하면 조정을 받을 수 있지만 처리 기간이 상당히 길고 까다롭다. 영세 하청업체들은 “떼인 돈을 받으려면 결국 소송을 해야 하는데 소송 비용이 만만찮아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 된다”고 하소연했다.

법무법인 ‘공정’의 황보윤 변호사는 “시공사들은 최소 인력만 유지하고 일감을 수주하면 하도급, 재하도급 등의 형태로 공사를 진행해 결국 가장 아래 단계에 있는 영세 업체가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도급 대금 중 사실상 인건비에 해당되는 부분은 지급 의무화 등을 통해 보호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상습적으로 임금을 체불하는 사업주에게 신용 제재, 징벌적 손해배상 등 고강도 제재를 내리는 방향으로 관련법을 개정했지만 도급 계약금은 그만큼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권혁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노무 제공의 대가성을 갖는 도급 계약 보수에 대한 법적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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