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북스]“한국이 노벨 문학상을 배출 못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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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24일 17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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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안(碧眼)의 번역가 브루스 풀톤 브리티시컬럼비아대(UBC) 교수● 1978년 평화봉사단으로 인연, 황순원 박완서 등 거장들 만나● “작가와 교감할 수 있는 번역가 만나야 노벨상 가능…”

브루스 풀톤 브리티시컬럼비아대(UBC) 교수.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브루스 풀톤 브리티시컬럼비아대(UBC) 교수.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한국에 있을 때만큼은 한국어로 말하고 한국 음식만 먹습니다. 한국어가 조금 서툴더라도 이해해 주세요."

그는 고집스럽게 한국어로 인터뷰에 응했다. 신중하게 단어를 선택해 아주 느릿느릿 자신의 생각을 한국어로 표현했다. 이미 30년째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노 교수의 표정은 너무도 진지해서 그에게서 쉬이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캐나다 밴쿠버에 위치한 세계적 명문인 브리티시컬럼비아대(UBC) 한국학 교수인 브루스 풀톤(Bruce Fulton·63) 교수에게 한국이란 '친밀한 관계' 정도의 상투적 어휘로는 설명이 부족한 매우 특별한 나라다.

1948년 미국 메사추세추 주에서 태어난 그는 줄곧 미국에서 성장했지만 서른 살 이후에 맺어진 한국이란 나라와의 인연의 끈을 붙잡고 함께 성장해왔기 때문이다.

"1978년 평화봉사단원으로 '우연'하게 한국에 도착했어요. 다른 친구들처럼 아프리카를 지원했는데 엉뚱하게 '한국'에 배정된 거죠. 갈지 말지를 고민하던 차에 평화봉사단 측이 한국에 배정된 단원들을 모아 뉴욕의 한인식당에 데려가더군요. 그 곳에서 깜짝 놀랄 만큼 '맛의 충격'을 받았어요. 냉큼 불만을 잠재우고 한국행을 택하게 됐습니다. 허허…."

■ 한국이름은 '우진호', 심은경 미국대사의 평화봉사단 후배…

1966년부터 한국에서 활동을 시작한 미국 평화봉사단원들은 주로 산간 벽지나 농촌에서 영어교사로 활동했다. (전 평화봉사단원 데이비드 래시터 씨 제공)
1966년부터 한국에서 활동을 시작한 미국 평화봉사단원들은 주로 산간 벽지나 농촌에서 영어교사로 활동했다. (전 평화봉사단원 데이비드 래시터 씨 제공)
평화봉사단은 스티븐슨 미국 대사의 활동으로 널리 알려진 미국의 제3세계 봉사활동기구다. 한국에서는 1967년부터 1981년까지 약 2000여명의 미국 젊은이들이 현장 봉사활동에 참가하며 한미관계를 돈독하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그는 전라북도 장수군 외딴 시골로 내려가 하숙생활을 하며 1년 반 가까이 학생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어떤 이들은 문화나 음식이 불편해 미국으로 서둘러 돌아간 이들도 있었지만 그에게 한국의 시골은 천국과도 같았다고 회고한다.

"무엇보다 풍경이 너무도 아름다 왔어요. 무엇보다 '정(情)'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됐죠. 하숙을 했다기보다 가족과 함께 살았다는 기분이었어요. 지금도 저를 돌봐준 가족께 고마움을 느낍니다. 그리고 '기(氣)'가 충만하다는 것도 인상적이었어요. 한국에만 오면 활력이 넘치는 제 모습을 보고 흠칫 놀라기도 합니다."

그는 자연스럽게 호남 사투리를 배웠고 전라도 음식의 매력에 빠졌다. 지금도 '거시기'라는 사투리를 쓸 정도인 풀톤 교수는 "서울 음식 참 싱겁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닐 정도로 전라도 음식 마니아이기도 하다.

또한 그는 평화봉사단 활동을 통해 이화여대 영어교육과를 나온 윤주찬 씨와 부부의 연을 맺게 된다. 한국과의 인연이 한층 더 복잡하게 엉킨 셈이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 그는 문학으로 석사학위(워싱턴 대학)를 마친 그는 한국어 공부를 조금 더하고자 1983년 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으로 돌아왔다. 그런 그에게 예상치 못했던 인생행로가 펼쳐졌다.

"당시 문화부에서 한국 문학작품의 세계화, 즉 번역사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할 때였어요. 그렇게 서울대 장왕록 교수를 알게 됐습니다. 그분이 소설가 황순원 선생의 '나무들 비탈에 서다'는 작품을 막 영문으로 번역을 마쳤고 감수자를 찾고 있었어요. 그렇게 저와 황순원 선생과의 인연이 시작된 거죠."

머지않아 그는 황순원의 소설세계에 흠뻑 빠져들었다. 내친김에 그는 박사학위 논문 주제를 한국소설로 잡았다. 서울대에서 받은 그의 문학박사학위 논문 제목은 '황순원 단편소설 연구'였다. 그는 황 선생의 인격뿐만 아니라 간결하고 아름다운 문체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가 조금 더 빨리 해외에 소개됐다면 노벨문학상을 탈만한 작가였다고 아쉬워했다.

■ 황순원 작가의 작품에 빠져들며 한국 소설 번역에 매달려

소설가 황순원 선생은 풀톤 교수에게 한국 문학과의 인연을 만들어준 스승 같은 존재였다. 동아일보 DB
소설가 황순원 선생은 풀톤 교수에게 한국 문학과의 인연을 만들어준 스승 같은 존재였다. 동아일보 DB
이후 그는 한국 문학의 영문 번역을 자신의 '업(業)'으로 받아들였다.

그가 처음 한국 소설을 번역해 출간한 때는 1989년이었다. 당시 황순원 선생으로부터 젊은 작가를 추천받아 오정희, 김진원, 강석경 등 세 명의 여류소설가의 대표작 9편을 번역해 '워드 오브 페어웰(Word of Farewell)'이란 제목으로 미국에 출판해냈다. 이 번역집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영미권에서 유통되는 한국문학의 대표적 영문 번역집으로 기록됐다.

1990년대에는 작가들을 대폭 넓혀갔다. 1930년대 일제시대 근대 소설가는 물론,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정래의 '유형의 땅', 최윤 '저기 소리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 박완서 '닮은 방' 등 한국의 대표적 현대소설을 번역해 영미권에 소개하며 한국문단의 숨은 공로자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의 노력이 빛을 발했는지 1998년부터 UBC 인문대학 아시아학과에서 한국문학을 강의할 수 있게 됐다. 그에게 한국 문학 번역작업은 무척이나 도전적인 작업이었다. 아무리 한국인 아내가 있고 한국에서 공부했다고는 하나 미국인의 관점에서 한국의 문학을 이해해 다시 그것을 영어로 옮기는 작업 자체는 난관의 연속이었다.

"한 작품을 번역하는데 1년씩 걸린 적도 허다합니다. 한 편의 문학작품 속에는 한국인이 거쳐 온 전통과 근대가 복합적으로 녹아있거든요. 하지만 재미가 없었다면 이렇게 오래 해오지 못했을 거에요."

그와의 인터뷰는 자연스럽게 한국 문학의 번역의 성과에 대한 논의로 흘러갔다.

널리 알려진 대로 한국어는 세계 10위권의 사용 인구를 자랑함에도 20여개 언어가 수상한 노벨문학상의 영광을 아직 얻지 못한 상태다. 그 이유로 '번역이 힘든 언어' '나쁜 번역' 혹은 '번역의 절대 숫자 부족' 등이 이유로 꼽히기도 했다.

■ 소설가와 번역가와 내밀하게 교감해야 좋은 번역 가능

브루스 풀톤 브리티시컬럼비아대(UBC) 교수.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브루스 풀톤 브리티시컬럼비아대(UBC) 교수.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하지만 풀톤 교수의 관점은 이 같은 통념과는 판이했다.

"우선, 번역의 숫자가 적고 질이 나쁘다는 관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미 많은 작품들이 번역이 됐고 번역도 매끄럽게 잘 된 작품이 많습니다. 오히려 제 생각에는 한국소설의 매력을 드러낼만한 작품이 번역이 안 된 점이 아쉽기는 합니다. 특히 번역이 단편소설에 집중됐다는 점도 아쉬운 대목이에요."

그는 황석영의 '장길산'이나 조정래의 '태백산맥', 박경리의 '토지' 같은 장편소설이 영어로 번역된다면 한국을 이해시키기에 나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같은 대하소설이 번역되기 위해서는 15년이나 20년이 걸릴지도 모르겠다는 걱정을 앞세운다.

또한 한국소설의 국제화를 위한 색다른 접근 관점을 제시하기도 한다.

"사실 번역의 양이나 질이 좋아지기 위해서는 (언어와 무관하게) 번역자가 작가를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한국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배출되기 위해서는 한 번역가가 한 작가의 작품을 꾸준하게 번역하며 교감을 나눠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세계적인 존경을 받는 번역가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한국 문단의 아쉬운 점은 어떤 측면일까? 한국 문단이 지나치게 '리얼리즘(사실주의)'에 매몰됐다는 비판을 제기하는 외국 학자들이 많다는 얘기를 슬쩍 꺼내봤다.

"네 저 역시도 그런 비판에 동의합니다. 상상력이 부족합니다. 한국의 문단은 자신들이 '지식인' '엘리트'라는 전통 때문인지 튀는 상상력을 조금은 이상하게 보는 경향이 느껴져요. 최근 편혜영 같은 젊은 소설가의 느낌을 주목하고 있어요. 중견시인 김혜순과 소설가 김영하의 상상력도 즐깁니다. 저는 고정된 틀을 뛰어넘는 젊은 작가들이 한국 문학의 미래라고 생각합니다."

■ 소설가 천운영의 <생강>이란 작품이 최근 번역 작품
http://www.yes24.com/24/goods/4776388

천운영 장편소설 생강.
천운영 장편소설 생강.
이 밖에도 그는 한국 문단에 부족한 추리소설 전통을 아쉬워했고, 번역가가 자유롭게 번역 작품을 선정할 수 없는 번역사업 지원시스템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최근 그는 여류소설가 천운영(40)의 '생강'이란 소설의 번역을 시작했다.

풀톤 교수와 천 작가와의 인연도 거진 10년을 헤아린다. 젊은 작가를 수소문하는 과정에서 그녀를 발견하고 그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꾸준하게 노력했다고 소회한다. '생강'은 고문기술자 이근안이 종교인으로 변화한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품으로 인간본성을 심도 깊게 탐구한 작품이다.

이 밖에도 웹툰작가 윤태호의 '이끼'를 보는 등 대중문화에도 깊은 관심을 내비쳤다. 하지만 그의 관심은 또렷하게 문학에 집중돼 있었다. 그는 여전히 한국소설을 기피하는 한국 젊은이들에게 진중한 어조로 한 마디를 건넸다.

"지하철 안에서 책을 보는 사람이 불과 한 두명 뿐 이더군요. 태반이 휴대폰에 빠져 있더군요. 저는 문학은 다른 대중문화와 달리 어마어마한 힘과 마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꼭 한국의 젊은이들이 문학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그가 머물고 있는 전농동 서울시립대 교정에 햇살이 가득했다. 이제 63살이 된 벽안의 노신사의 수염이 가볍게 바람이 날렸다. 그의 표정은 골목 어귀에서 책을 읽고 있는 마음씨 좋은 이웃집 할아버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세 기자는 예술에 있어 국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랑이 가장 중요한 덕목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본 기사는 YES24와 함께 합니다>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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