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처 잘못” 고위당정협의회 하루 뒤 긴급회견 자청
朴전대표 핵심측근… 정책능력 불신 조기차단 해석도
■ 유정복 농식품 장관 사의표명 배경은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28일 사의를 표명한 표면적 이유는 스스로 밝혔듯 구제역 피해가 확산되면서 책임론이 거세진 데 따른 것이었다. 하지만 이면에는 내년 대선을 앞둔 여권 내부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유 장관은 친정인 한나라당에서 자신에 대한 책임론이 공공연히 거론되는 상황에 압박감을 느낀 것으로 전해졌다. 하루 전인 27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국무총리공관에서 열린 고위당정협의회 비공개 회의에서도 구제역 대응을 둘러싸고 주무장관인 유 장관에게 여당의 질책이 쏟아졌다고 한다.
한나라당 홍준표 최고위원은 “(구제역 대응) 매뉴얼대로 진행했는데 매뉴얼에 문제가 있는 부분이 있었다”고 해명하는 유 장관에게 “상황이 이 지경인데 지금 변명하듯 할 자리냐”며 거세게 비판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무성 원내대표도 “구제역에 대한 잘못된 대처 때문에 이 정부가 점수를 까먹고 있다”고 몰아붙였다는 것.
유 장관의 거취표명을 일종의 ‘선제적 대응’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유 장관은 박근혜 전 대표의 비서실장을 지낸 핵심 측근이다. 박 전 대표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줄곧 여론조사 1위를 달리며 대선행보를 본격화하는 때에 핵심 참모의 정책실패론이 장기화된다면 ‘미래권력’의 정책능력까지 불신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박 전 대표의 한 측근은 “이건 친이(친이명박), 친박(친박근혜)의 문제가 아니라 가축전염병 피해에 주무장관이 책임지는 문제”라고 말했다. 이런 기류 속에서 유 장관이 박 전 대표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조기에 결심을 했다는 해석을 낳고 있다.
한나라당에서는 구제역으로 악화된 농촌 민심이 설 연휴를 타고 전국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조기에 사의를 수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하지만 청와대는 고심하고 있다. 장관 교체에 따른 인사청문회도 부담이지만, 자칫 유 장관 문제가 친이, 친박 갈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지난해 8월 유 장관의 입각 자체가 세종시 문제로 극단으로 갈렸던 양 계파의 공존, 화해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터다.
청와대 관계자는 “유 장관이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사태 수습과 방역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했으니 지켜봐야 한다. 사의 쪽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맞지 않다”며 말을 아꼈다. 청와대 일각에선 일단 일을 맡기면 믿고 사람을 잘 바꾸지 않는 이 대통령의 스타일을 거론한다. 유 장관을 불명예 퇴진시키기보다는 구제역 사태를 수습한 뒤 적절한 시점에 여의도에 복귀할 수 있도록 배려하지 않겠느냐는 얘기다.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작년 12월 담화문, 8개월전과 판박이 구제역 사태와 관련해 정부가 장태평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시절인 지난해 4월 22일 발표한 담화문(왼쪽)과 유정복 장관이 취임한 후 지난해 12월 15일 발표한 담화문. ‘4월 8일 인천 강화’와 ‘11월 28일 경북 안동’ 등 날짜, 지명만 빼면 두 담화문의 내용은 판박이다.
농림수산식품부 홈페이지 및 보도자료 화면 캡처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