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집중분석]日 걸그룹 유행코드는 지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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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21일 14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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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시대가 일본에서 두 번째로 선보인 싱글 'GEE'가 첫날 오리콘 데일리 차트 2위에 오르는 기록을 세웠다. 하루 동안 추정 판매량도 2만9000여장으로 집계됐다.

오리콘 차트 기록은 주간 차트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다음주 가봐야 소녀시대 'GEE'의 공식적인 성적을 알 수 있지만 현재로선 2위 이상의 순위가 무난해 보인다. 소녀시대는 일본에 진출한 한류 아이돌 가운데 BoA, 동방신기에 이어서 세 번째로 높은 오리콘 싱글 차트 기록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처럼 일본에선 지금 한류 걸그룹 열풍이 거세다. 일본에서 '엉덩이 춤' 돌풍을 일으킨 카라가 한국어 베스트앨범으로 오리콘 앨범 차트 2위에 오르는 등 음반 판매량만으로도 놀라울 정도다. 일본 여자 아이돌 시장에서 '한류 걸그룹'이 새로운 유행코드로 부상한 것이다.

한류와 함께 요즘 일본 걸그룹의 유행코드를 대표하는 키워드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지역구'다. 정치판도 아닌 아이돌계에서 지역구 얘기가 나오는 이유는 현재 일본 최고의 걸그룹으로 꼽히는 AKB48을 보면 알 수 있다.

일본 걸그룹 AKB48.
일본 걸그룹 AKB48.

'만나러 갈 수 있는 아이돌'을 표방하며 데뷔한 AKB48의 그룹 이름은 도쿄 아키하바라 극장에서 공연을 한다는 점에 착안해 만들어졌다. AKB는 극장이 위치한 아키하바라(Akihabara)의 영문 표기에서 따온 것이다.

AKB48은 메이저 데뷔에 앞서 아키하바라 공연을 위주로 활동했다. 주로 남성으로 이뤄진 소수의 팬들이 열성적으로 공연을 찾았고 입소문을 타면서 일본을 대표하는 걸그룹으로 떠올랐다.

AKB48의 대성공은 이들과 비슷한 자매 그룹을 계속 양산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지역구' 걸그룹이 눈길을 끌고 있다. '아키하바라의 아이돌'인 AKB48처럼 일본 각지에 세워진 전용극장을 중심으로 지역 대표 걸그룹이 생기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나고야의 SKE48이다. 그룹 이름 뒤에 붙은 숫자는 AKB48과 아예 똑같다. 앞의 지명 약자 표기만 다르다. SKE48은 나고야의 사카에(Sakae) 지역에 전용극장이 마련돼 있는 나고야 대표 걸그룹이다.


또 일본 제2의 도시 오사카에선 NMB48이라는 그룹이 탄생했다. 도쿄가 일본의 수도이자 칸토(關東) 지방을 대표하는 도시라면 오사카는 칸사이(關西) 지방의 대표 도시다.

NMB는 오사카의 명소 남바(Namba)를 뜻한다. 남바는 패션과 맛집 등이 몰려 있어 오사카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거리로 유명하다. 오랫동안 묘한 경쟁 관계에 있는 도쿄와 오사카를 기반으로 한 AKB48과 NMB48의 라이벌 구도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큐슈(九州)의 중심도시인 후쿠오카에선 HKT48이 조만간 데뷔할 것으로 알려졌다. HKT는 하카타(Hakata)의 약자다. 하카타는 후쿠오카의 옛 지명인데 지금도 많이 쓰인다.

히로시마를 대표한다는 MMJ도 다음달 데뷔를 앞두고 있다. 이미 히로시마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이 그룹의 명칭 MMJ는 히로시마의 명물과자인 '모미지만쥬'(Momiji Manjyu) 영문 표기를 줄인 것이다.

MMJ는 모미지만쥬처럼 히로시마 스타일의 달콤한 음악을 팬들에게 선사하겠다는 각오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AKB48, SKE48, NMB48, HKT48처럼 전용극장이 마련된 곳의 지명은 아니지만 지역적인 특색을 내세운 점에선 같다.


이처럼 일본 걸그룹들이 전국을 대상으로 한 메이저 데뷔에 앞서 지역구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배경은 AKB48의 '만나러 갈 수 있는 아이돌' 전략이 대박을 낸 결과에서 찾을 수 있다.

처음부터 음반 발매를 위해 홍보에 엄청난 돈을 투자하며 신인 그룹을 키우는 것보다 각 지역 팬들을 대상으로 소규모 공연을 하는 편이 손실 위험성을 낮춰주기 때문이다. 지역의 열성 팬들을 통해 입소문이 나면서 그룹을 차차 알릴 수 있다는 점에서도 유리하다.

또 각 지역에서 팬들의 반응을 미리 살펴보며 인기 멤버를 가려내는 등 메이저 데뷔를 위한 준비 작업을 쉽게 할 수 있다. 소규모 공연을 통해 걸그룹 멤버들이 무대 경험을 익히면서 라이브와 춤 실력을 쌓는 효과도 보게 된다.

일본 음반시장이 갈수록 침체되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이미 톱스타로 자리매김한 가수들은 기존 팬들의 구매력을 동원해 음반 차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지만 신인의 경우엔 곡이 좋아도 음반 판매량이 떨어져 미디어의 주목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음반시장 축소로 인해 일본에서도 대형 신인이 좀처럼 등장하지 못하고 있다.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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