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서전 ‘누구 없는가’에도 실리지 않은 일화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월 4일 03시 00분


○ 성철 스님 모시며…
신도 불평 하소연하니 “그 덕에 우리가 어른노릇”
사표 못 꺼내고 돌아섰는데 대중들이 예뻐 보여

○ 김치찌개와 제자
솜씨 없는 제자 탓에 몸살 중에도 요리 직접 시범
제자, 김치 포기 통째 끓이는 그 단순함에 감동


1980년대 성철 스님과 함께  근대 한국 불교계를 대표하는 걸출한 선지식이었던 성철 스님(오른쪽)과 법전 스님. 1980년대 모습이다. 사제지간인 두 사람은 모두 종정 자리에 올랐다. 사진 제공 해인사
1980년대 성철 스님과 함께 근대 한국 불교계를 대표하는 걸출한 선지식이었던 성철 스님(오른쪽)과 법전 스님. 1980년대 모습이다. 사제지간인 두 사람은 모두 종정 자리에 올랐다. 사진 제공 해인사
종정 스님의 자서전 ‘누구 없는가’는 연말연시 독서 시장에서 빠르게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라서고 있다. 다른 고승들의 전기와는 달리 쉽고 편안하면서도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자서전에도 실려 있지 않은 종정 스님의 일화들.

# 첫 번째 일화

법전 스님이 성철 스님을 모시고 수백 명의 대중을 뒷바라지하면서 해인사 주지를 할 때 일이다. 그해 안거철에 모인 대중이 종무소 소임자들에게 얼마나 불평을 늘어놓는지 도저히 시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매이지 않는 선객(禪客)답게 걸망을 지고 그냥 떠나버릴까 하다가 그래도 형식은 갖추어야겠기에 성철 스님의 거처인 백련암으로 올라갔다. 저간의 사정을 가만히 듣고 있던 성철 스님께서 한마디 하셨다.

“그래도 그런 대중이라도 있으니까 니하고 내하고 다 어른 노릇 하고 사는 거 아니가?”

그만 말문이 딱 막혀버렸다. 호주머니에 있던 사표는 꺼내보지도 못한 채 큰절로 내려와야 했다. 한 생각 돌이키니 미워 보이던 대중이 갑자기 예뻐 보였다. 그래도 결제 때 공부하겠다고 이렇게 모여준 것만 해도 기특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전보다도 더 열심히 대중을 받들어 시봉했다. 물론 이후 대중도 더 열심히 공부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 두 번째 일화

법전 스님이 당신이 머물던 절 살림을 제자에게 맡기고 다른 사찰로 떠났다. 몇 달 후 볼일이 있어 잠시 들르게 되었다. 주변을 살펴보고는 깜짝 놀랐다. 풀이 제멋대로 자라서 봉두난발의 상태였다. 경내는 말할 것도 없고 주변 산허리까지 면도하듯 해놓고 살던 예전의 그 절이 아니었다.

“게으른 녀석 같으니. 당장 주변에 풀 한 포기도 남기지 말고 깨끗이 뽑아!”

불호령이 떨어졌다. 제자는 속으로는 여전히 못마땅해 웅얼거리고 있었다. ‘풀꽃도 아름답고 벌 나비도 날아오는데….’

제자는 “예!” 하고 대답만 하고 소신껏(?) 하루 종일 그대로 두었다.

다음 날 아침 스승은 아랫마을 쪽으로 내려갔다. 제자는 ‘산책 가시나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그게 아니었다. 웅성거리는 소리에 나가 보니 마을 사람 몇 명을 사온 것이었다. 그리고 진종일 마당은 말할 것도 없고 온 산중을 누비면서 풀 깎는 일을 진두지휘하고 있었다.

# 세 번째 일화

제자는 스승인 법전 스님을 열심히 시봉했다. 마음과 달리 해보지 않은 부엌살림은 하루아침에 느는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날은 갑자기 “감기몸살 기운이 있어 밥맛이 없으니 김치찌개를 해 달라” 하시는 것이었다. 솜씨가 없는 줄 익히 아시는지라 그동안 다른 것은 참고 드셨을 것이다. 그런데 그날은 안심이 안 되셨는지 수건으로 목을 감고서 직접 부엌으로 나오셨다. 그러더니 손수 도마 앞에 서서 김치찌개 끓이는 법을 시범 보이셨다. 그리고 ‘예전에 토굴 살 때 이렇게 끓이면 노스님도 잘 드셨다’는 말까지 함께 덧붙였다. 요리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장독에서 김치를 꺼내 머리 부분만 잘라내고 통째로 은근한 불에 오래 끓이기만 하면 됐다. 들기름 깨소금 등 양념의 배합을 보여줄 줄 알았던 초짜 제자는 그 단순함에 감동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노장께서 김치 다루는 법부터 가르쳐준 그 광경이 잊히지 않는다고 제자는 회고했다.

대구=오명철 전문기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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