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에너지 소비 실정도 모르고 만든 가전제품 소비세

동아일보 입력 2009-07-30 03:00수정 2009-09-21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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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내년부터 냉장고와 드럼세탁기, TV, 에어컨 등 4대 가전제품에 5∼10%의 개별소비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보여준 정책 실력은 한심한 수준이다. 지식경제부는 6월 이명박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발표한 ‘신(新)에너지 대책’에서 에너지를 많이 쓰고 에너지 효율이 낮은 품목에 소비세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대용량 가전제품이 에너지 효율이 낮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마련한 정책이었다.

그러나 그 뒤 한국조세연구원에 용역을 주어 실시한 조사 결과는 정부의 예상과 달랐다. 대부분의 대용량 가전제품이 절전형인 에너지 효율 1등급에 속하는 반면, 서민들이 두루 쓰는 전기밥솥이나 다리미 보급형냉장고 등은 4, 5등급으로 오히려 에너지를 많이 쓰는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는 서둘러 과세 기준을 ‘에너지 효율’에서 ‘용량’으로 바꿨다. 결국 에너지 절약을 꾀한다며 에너지 효율이 높은 대용량 제품에 세금을 물리는 모순된 정책이 되고 만 것이다.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 당국자는 “가전제품에 대해 잘 모르고 정책을 만들었다”고 실토했다고 한다. 현실과 동떨어진 탁상머리 구상을 섣불리 공표한 생색내기도 잘못됐고, 잘못을 고치지 못하고 정책실패를 키워가는 관료의 무사안일도 큰 문제다. 대통령 앞에서 발표한 정책이어서 폐기하지 못하는 건 아닌지 궁금하다. 가전제품에 소비세를 부과하는 방안은 민간소비를 되살려 경제 회복을 앞당기려는 정책방향과도 어긋난다. 자동차는 취득세와 등록세를 감면해주면서 일부 가전제품엔 소비세를 부과하면 형평성 시비도 제기될 것이다.

중국은 소비증진을 위해 농촌가구가 구입한 가전제품 값의 13%를 보조금으로 주고 있고 일본도 디지털TV 구입 시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우리만 거꾸로 소비를 위축시키고 있을 때가 아니다. 첨단기술을 동원해 대용량 가전제품의 에너지 효율을 높여온 업계가 “소비세가 향후 기술 발전을 저해할 것”이라고 반발하는 건 일리가 있다. 세계에 유례가 없는 에너지 소비와 관련된 과세는 국내에 진출한 외국 가전업체가 문제를 제기하면 통상마찰로 번질 수 있다.

엉터리 정책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정책실명제를 도입해야 한다. 정책을 입안, 감독한 공무원은 물론이고 용역 연구자 등의 이름과 주장을 기록에 남기고 공개할 필요가 있다. 명백한 잘못에 대해서는 책임도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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