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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7월 3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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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295명의 당선 횟수를 살펴보면 7선이 1명(조순형), 6선이 3명(이상득 정몽준 홍사덕), 5선이 6명(김영진 김충조 김형오 박상천 이용희 이인제), 4선이 19명, 3선이 45명, 재선이 89명, 초선이 132명이다. 전체 의원 중 초·재선이 221명으로 약 75%다. 반면 4선 이상 중진은 모두 29명으로 전체의 10%에 불과하다. 금배지를 한 번 달기도 힘든데 중진 반열에 오르는 건 아무나 꿈꿀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유권자들의 신뢰가 두텁고 정치력이 뛰어나지 않다면 운(運)이나 조상의 음덕만으론 그런 위치에 오를 수 없다.
이런 중진들의 존재감이 요즘 정치권에선 느껴지지 않는다. 위상도, 영향력도 예전 같지 않다. 18대 국회 들어 여야가 1년이 넘게 정쟁의 파열음을 냈지만 중진들이 갈등을 푸는 데 앞장섰다거나, 막후에서 거중조정(居中調停)을 했다는 이야기를 별로 들어보지 못했다. 최근엔 여야가 비정규직 보호법 문제로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어도 각 당 중진들은 그저 뒷짐만 진 채다. 국회 운영의 책임이 일단 여야 지도부에 있고, 언론의 관심도 주요 당직자들에게 집중되는 상황에서 중진들이 전면에 나서는 게 적절치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혹은 공연히 나섰다가 선배도 몰라보는 후배들에게 면박이나 당하지 않을까 걱정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여야의 협상력이 바닥을 드러낸 현 정국은 중진들이 수수방관해도 좋을 만큼 한가롭지 않다. 무능력한 여야 지도부가 제 역할을 못한다면 중진들이라도 당적을 초월해 국가와 국민을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 정치판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경륜과 노련한 정치력을 발휘해 여야 강경파들을 설득하고, 때로는 꾸짖어서라도 타협을 종용해야 한다. 국민이 피눈물을 흘리는데도 책임 떠넘기기에만 급급한 정치권을 이대로 놓아둬선 안 된다.
여야가 첨예하게 맞서는 현안을 놓고 국익과 당리, 여론 사이에서 절묘한 절충점을 찾는 건 결코 쉽지 않다. 밀고 당기되 여당은 힘만 앞세울 게 아니라 야당의 주장을 경청하고 체면을 살려주며, 야당도 반대만 할 게 아니라 여당의 양보를 일정 부분 이끌어 내는 선에서 적절히 타협하는 게 정치의 묘다. 중진들이 여야 지도부를 도와 그런 분위기를 조성해 줬으면 좋겠다.
과거 어려운 고비마다 정국에 숨통을 틔우곤 했던 ‘여야 중진회동’ 기사가 신문에서 사라진 게 언제인지 모른다. 이런 난국에도 중진들이 “다음 기회에…”라며 발을 뺀다면 다시는 ‘다음’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
한기흥 정치부장 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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