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조은아]카자흐의 ‘중국 혐오’ 우리도 경계해야

  • 입력 2009년 6월 22일 02시 56분


지난달 말 자원개발 현장 취재를 위해 카자흐스탄 악토베를 찾았다. 인구 32만 명가량인 이곳은 중국 소도시에 온 듯한 착각이 들 만큼 ‘중국 색채’가 강했다. 국제공항에서는 현지어보다 중국어가 더 먼저 들렸다. 도심 대로변에는 중국석유천연가스집단공사(CNPC) 건물이 우뚝 서 있었다. 시내 곳곳에서는 붉은 로고의 중국계 정유회사 간판이 자주 눈에 띄었다. 중국어 간판을 단 건물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런 중국의 영향력이 놀라울 것은 없다. 중국은 일찍이 1995년경부터 이 지역의 자원개발 가능성을 내다보고 진출했기 때문이다. CNPC는 악토베 인근 광구에서 하루 평균 10만 배럴의 석유를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좋은 광구를 미리 차지해 석유를 뽑아내고 있는 중국 때문에 다른 외국계 회사들이 발을 들이는 건 쉽지 않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오히려 놀라운 것은 중국에 대한 현지인들의 반감(反感)이었다. 기자가 악토베에 도착한 지난달 26일 현지 통신사 ‘인테르팍스 카자흐스탄’은 중국 CNPC가 소유한 현지 합작법인 ‘CNPC-악토베무나이가스’ 전현직 직원들이 회사 경영진에 손해배상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이 통신사는 “회사 전현직 직원 약 1000명이 회사가 환경법을 위반해 환경오염을 일으켜 광구 주변 주민을 병들게 하고 노동법을 어겨 현지 직원들에게 차별적으로 임금을 지급한다고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현지 정부 관계자도 강한 불만을 털어놨다. 자원개발 담당 정부 관계자는 “새로운 작업장을 건설하면 적어도 그 지역 도로를 잘 닦고 주민들에게 도움을 줘야 하는데 중국 회사는 피해만 준다”고 지적했다. 단순한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 아니라 적개심이 느껴지는 혐중(嫌中) 감정에 가까웠다. 길을 지나던 한 현지인은 중국어로 “니하오(니好·안녕)”라고 비아냥거리며 기자를 툭 치고 지나갔다. 악토베에서 근무하는 한국인 주재원은 “요즘 중국인을 타깃으로 한 범죄가 있다는 설이 돌아 저녁에 외출하기가 겁난다”고 전했다.

비록 먼 나라 변방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지만 가깝게 보고 무겁게 새길 일이다. 단순히 그 나라의 자원만 뽑아오는 게 아니라 서로 도움을 주고 함께 발전할 때 자원 확보도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침 현지에서 좋은 아이디어를 들었다. 카자흐스탄 등 자원부국들이 한국의 경제개발, 외환위기 극복 경험을 배우고 싶어 한다는 것. 한국이 비싼 수업료를 내고 얻은 경험을 전수하며 진정한 자원외교를 한다면 치열한 자원전쟁에서도 이길 것 같다.

-악토베에서

조은아 산업부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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