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시중에 풀린 돈, 기업에 흘러가야 ‘피’가 되련만

  • 입력 2009년 5월 26일 02시 56분


정부가 경제를 살리기 위해 시중에 푼 돈이 금융권 주변에서 맴돌면서 실물부문, 기업 쪽으로는 잘 흘러가지 않고 있다. 시중 유동성은 풍부하지만 정작 산업현장에서는 적지 않은 기업이 자금난을 호소한다. 이른바 ‘풍요 속의 빈곤’이다. 금융감독원은 4월 말 현재 가계와 기업의 단기 유동성 규모가 811조3000억 원으로 작년 말보다 63조4000억 원 늘었다고 추계했다. 금감원이 제시한 수치(數値) 가운데 중복된 부분을 감안해도 대략 800조 원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과잉 유동성 논란에 과민하게 반응해 섣불리 긴축정책으로 돌아섰다가는 실물 및 금융시장에 심각한 충격을 줄 우려가 있다. 지금 위기 극복 과정에서 재정 악화 및 유동성 급증에 따른 인플레이션이 우려된다고 해서 대책을 내놓을 단계는 아니라고 본다. 일본이 이런 정책적 오류를 범해 1990년대에 ‘잃어버린 10년’을 경험한 사실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한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도 “지금 유동성이 너무 많다고 판단할 수 없고, 과잉 유동성 회수를 본격 거론할 단계도 아니다”라고 밝혔다.

현대경제연구원은 기업 자금난의 이유로 ‘저금리→은행 수신 감소, 연체율 증가→금융기관 건전성 악화, 기업의 신용위험 증가→은행의 대출 기피, 경제 불확실성 증대→투자할 곳 부재(不在)’ 같은 연쇄적이고 복합적인 요인을 들었다. 시중에 풀린 자금이 공장을 짓거나 설비를 사들이는 데 투자되지 않고 금융권에서만 맴도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중소기업들의 자금 사정이 나쁘다.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기업들이 당면한 애로사항으로 일거리 부족, 수익성 악화, 기업 활동에 대한 규제와 함께 ‘중소기업 자금난’을 꼽았다.

정부는 은행의 건전성을 높여주는 정책을 펴 기업 대출을 유도해야 한다. 제때 적절한 기업 구조조정을 통해 불확실성을 줄임으로써 돈이 유효한 곳으로 흐르도록 해야 함은 물론이다. 상태가 좋은 대기업들은 위기 이후의 도약까지 염두에 두고 적극적 투자전략을 마련함으로써 ‘후방’을 더 튼튼히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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