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기홍]매케인의 敵은 오바마 아닌 시대흐름

  • 입력 2008년 10월 27일 02시 58분


주말에 만난 ‘밥’은 공화당원이다. 차에는 ‘Vote for NObama(오바마에게 투표하지 말라)’란 스티커가 붙어 있고 집 마당엔 ‘Virginia is Mccain country(버지니아는 매케인 지역)’라는 팻말이 서 있다.

그는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를 “한평생 명예와 신념을 지켜온 드문 애국자”라고 존경한다. 하지만 그는 “이번 선거는 매케인이 아니라 매케인 할아버지가 와도 어렵다”고 안타까워한다.

“부시가 망쳐놓은 게 워낙 많아서 주변 젊은 사람들과 여자들이 다 돌아섰다”는 게 그의 관찰이다.

선거 전문가도 아닌 전형적인 ‘조 식스팩(Joe six-pack·퇴근길에 6병들이 맥주 팩을 사들고 가는 평범한 미국인)’인 밥의 말을 들으면서 ‘거대한 흐름’이란 단어가 새삼 떠올랐다.

8일 남은 이번 대선을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를 중심으로 보면 미국 역사의 새로운 장(chapter)을 열어가는 역사적 도전이다.

반면 매케인 후보의 처지에서 보면 ‘거대한 물결에 맞선 고군분투’가 아닐까. 어쩌면 이번 승부는 ‘오바마 대(對) 매케인’의 대결이 아닌 ‘거대한 물결 대 매케인’의 겨룸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신기욱(사회학) 스탠퍼드대 교수는 “후보 개인도 중요하지만 시대 흐름이 중요한데, 매케인은 처음부터 이기기 어려운 구조에서 시작했다”며 “거대한 흐름을 반전시킬 만한 카드나 역량이 있느냐가 관건인데, 누가 공화당 후보가 됐어도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 교수를 비롯한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꼽는 그 거대한 흐름은 조지 W 부시 행정부 8년간의 실정(失政)과 여성, 소수 인종 등 시민사회의 성장이 결합돼 분출되는 변화의 욕구다.

이런 흐름 속에 선거 막판엔 ‘금융위기’라는 쓰나미(지진해일)가 닥쳤다. 게다가 상당수 미국의 주류 언론은 거의 일방적으로 친(親)오바마 성향을 보이고 있다. 선거자금도 오바마 후보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매케인 의원은 첫 대권 도전인 2000년 공화당 경선 때 부시 후보에게 패했다. 당시 부시 진영의 흑색선전에 큰 상처를 받았다. 8년 만의 재도전에선 부시 대통령의 허물에 발목이 잡혀 있다.

새로운 역사를 열어가는 오바마 후보의 성취가 대견한 동시에, 70평생 지조와 신념을 지켜온 ‘부도옹(不倒翁)’ 매케인 후보의 분투가 안쓰럽다.

이기홍 워싱턴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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