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시인 150여명 시선집 번역 맡은 한성례 시인
내년에 나올 이 시선집을 기획하고 번역을 맡은 이는 한성례(53) 씨. 한 씨는 10여 년간 정호승 안도현 최영미 시인 등을 일본에 소개해 왔다. 그는 ‘또 하나의 로마인 이야기’ 등의 역자이자 시집 ‘실험실의 미인’을 펴낸 시인이기도 하다.
11월 도요비주쓰샤와 함께 일본의 양대 시문학 출판사로 꼽히는 시초샤(思潮社)에서 출간될 박주택 시인의 시집 번역도 맡은 한 씨는 “일제강점기를 거친 세대들은 일본어로 직접 시를 쓰기도 했지만 1945년 이후에 출생한 사람들이 유럽, 영문학 쪽으로 관심을 돌리며 아시아권 문학, 특히 일본문학을 기피했다”며 “해외에 소개될 기회가 많지 않은 젊은 시인들을 일본에 소개해 양국 문학의 가교를 놓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 씨는 일본에 소개할 시인과 작품을 직접 선정해 기획하고 출판사와 조율 과정을 거친다. 1997년 자신의 일본어 시집 ‘감색치마폭의 하늘은’(세이주샤)을 출간하기도 했으며 시문학 월간지 겐다이시데초(現代詩手帖), 시가쿠(詩學), 시토소조(詩と創造)를 비롯한 일본 15개 문학지에 한국 문학작품과 시 동향을 소개해 오고 있다.
그는 “시 번역자는 언어뿐 아니라 창작에 조예가 있으면서 그 나라의 시단까지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며 “특히 문학지 일간지 칼럼 등을 통해 작가와 시집이 많이 소개되면 출판사들이 관심을 갖게 되고 시도 자연스럽게 세계화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 출판시장이 중요한 것은 한국 시의 세계 진출을 위한 디딤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서구에서 아시아 문학을 접할 때 시초샤, 도요비주쓰샤 등 일본의 대표적 출판사에서 출간된 시리즈를 관심 있게 살핀다는 것.
한 씨는 “최근 중국이나 대만이 국가의 지원으로 시초샤에서 자국 시집 시리즈를 내는 것이나 중일 번역문학상을 제정한 것도 이런 점을 염두에 둔 작업”이라며 “반면 한국은 이런 노력이 약하다”고 말했다.
“고은 시인의 시집도 번역이 많이 돼 있지만 인지도 있는 출판사에서 나온 게 없는 게 아쉽습니다. 서구 진출을 겨냥한다면 일본의 대표적 출판사에서 번역 출간되는 것도 중요한 요소가 되니까요.”
일본에서 한국 시집에 대한 관심은 높다. 일본에서 시집은 초판 300∼400부를 찍는데 한국 번역 시집은 초판을 1000부 이상 찍고 재판에 들어가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는 것. 그는 “일본 전후세대 시인들의 현대시는 난해한 반면 한국 시는 일상에 스민 시가 많고 보편적 감수성에 호소해 인기가 높다”며 “특히 정호승 최영미 시인처럼 동사가 많거나 보편적이고 감성적인 시가 반응이 좋다”고 전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