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전성철]신자유주의 정말 끝장난 걸까

  • 입력 2008년 10월 2일 02시 58분


미국발 금융위기는 정말 신자유주의에 마침표를 찍는 사건일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렇지 않다. 1929년 미국의 대공황이 자본주의의 종언을 고하는 대사건이 아니었듯이 말이다. 대공황은 자본주의를 죽이기는커녕 더욱 건강하고 힘차게 작동하도록 만드는 획기적인 계기가 됐다.

대공황은 어떻게 오게 됐을까? 크게 두 가지 이유였다. 첫째는 급속도로 팽창하는 미국 경제가 필요했던 만큼의 화폐를 정부가 공급하지 못했고 그것이 수많은 기업의 도산을 불러왔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당시 대기업의 부패와 비리였다. 그때는 증권거래법이 제대로 없었고 기업의 윤리를 다루는 법이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상장 기업이 너도 나도 분식회계를 했고 그것을 믿은 투자가들이 엄청나게 부풀려진 값으로 주식을 샀다. 이런 사실이 들통 나면서 순식간에 주가가 폭락했고 기업 도산이 합쳐지면서 대공황이 왔다.

대공황의 결과는 어땠는가? 오늘날 미국 경제의 근간이 되는, 투명성을 확립하는 수많은 질서법을 제정하는 계기가 됐다. 이에 따라 미국의 경제는 더 투명하고 건강해졌다. 이 투명성이 그 후 70년에 이르는 미국 경제의 발전, 전 세계 자본이 몰리는 건전한 경제의 원천이 됐다.

이번의 미국 금융 위기는 투자금융 분야에서 나왔다. 미국의 투자 금융은 크게 보았을 때 전통적인 정부 규제의 밖에 있었다. 이유는 투자 금융이 특별히 예뻐서가 아니었다. ‘가진 자’의 놀음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부자가 자기 리스크하에서 투자하는 행위를 정부가 간섭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있었고 이런 자유 속에서 투자금융은 특히 지난 30여 년간 엄청난 규모로 성장했다. 특히 파생상품이라는 신종 금융 기법을 개발하면서 투자금융은 경제의 모든 부문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영역으로 발전했다. 이번의 위기는 이 부문도 정부의 감시와 적절한 규제가 필요할 정도로 비대해졌음을 알려 주는 사건이다.

이번 위기가 1929년의 대공황,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한국의 외환위기와 비교하여 무엇이 다른가? 근본적으로 이번 위기는 금융의 본체, 즉 은행의 위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대공황 때는 수천 개의 은행이 불과 몇 달 만에 파산했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은 부동산 가격의 폭락으로 야기된 은행의 부실에서 왔다. 한국의 외환위기는 대기업의 부실로 은행이 부실해져 버린 데서 왔다.

현재 미국의 기업과 은행은 대부분 기본적으로 건실하다. 위기는 투자금융 분야, 그것도 주택 금융과 관련된 분야에 한정된다. 손해를 많이 본 씨티은행 등도 주택 대출 채권 분야에서만 손실이 발생했다. 1년에 14조 달러를 생산하는 미국의 경제력은 5000억 달러 정도인 투자금융 분야의 부실을 감당해 낼 만큼 충분히 강하다.

미국 집값이 내려가면서 미국 경제가 당분간 어려울 것이라는 데는 이론이 없다. 그러나 은행과 기업이 건강한 이상, 경제는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일정한 기간 후 다시 회복될 것으로 전망된다. 도리어 정부의 감시 밖에 있었던 투자금융 분야가 이제 감시의 시계 안에 들어오면서 자본주의는 더 건강해질 것이다.

이번 위기에 대해 신자유주의의 종언을 고하는 대사건이라고 호들갑을 떠는 일부 지식인에게 부화뇌동하는 자세는 경계해야 한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자본주의는 이런 위기를 겪으면서 더 건강해져 왔다. 이 위기는 ‘시장의 실패’가 아니라 ‘시장을 누리는 대가’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전성철 세계경영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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