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남경현]어처구니없는 주공의 ‘채용자료 폐기

  • 입력 2008년 8월 15일 02시 56분


얼마 전 기자는 어느 저녁식사 모임에서 귀가 번쩍 뜨이는 얘기를 들었다. 대한주택공사가 지난해 신입사원 채용자료를 모두 폐기했다는 내용이었다. 기자는 ‘주공이 사기업도 아닌데 설마 중요한 인사자료를 없애기야 했겠느냐’라고 반신반의했다.

그렇지만 확인은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동료기자와 취재에 나섰다. 마침 공교롭게도 주공이 2006, 2007년도 정규직 신입사원의 시험답안지와 면접자료를 폐기한 사실을 적발한 감사원이 이를 발표한 날이었다.

그러나 감사원이 적발한 것은 주공의 채용서류 폐기의 일각에 불과했다. 취재과정에서 더 큰 문제는 인턴사원 채용제도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필기시험도 없는 인턴사원의 유일한 채용 원본자료인 면접채점표까지 폐기한 사실이 확인됐다.

▶본보 14일자 A1면 참조
주공, 盧정부 5년간 채용 자료 모두 폐기

▶본보 14일자 A6면 참조
‘신이 내린 인턴’…100% 정규직 전환 - 정규직 봉급의 70%

인턴사원은 말이 인턴이지 사실상 정규직이나 다름없었다. 불과 몇 개월만 지나면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441명을 채용했는데 같은 기간 채용한 정규직의 절반을 넘었다.

채용비리를 은폐하려 한 것 아니냐는 오해를 살 수 있는데 왜 폐기했느냐고 묻자, 주공 인사담당자로부터 돌아온 답은 “보관 장소가 부족하고 내부 공사를 하면서 폐기했다”는 것이었다. 다시 따지자 그는 “보관해야 할 서류인지 몰랐다”고 군색하게 해명했다.

본보의 취재사실이 윗선에 보고됐는지, 주공의 간부가 전화를 걸어왔다. “나도 처음에 보고를 듣고 깜짝 놀랐다. 정말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채용비리는 없다.”

그러나 주공 안팎에서는 채용비리 소문이 파다했다. ‘모 이사의 배경으로 누가 들어왔다’, ‘누구는 본부장과 연줄이 있다더라’, ‘외부에서 입김이 작용했다’ 등등…. 심지어 노조의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주공은 최근 경찰의 수사과정에서 구속된 전현직 주공 간부들 간에 인사 청탁하며 3700만 원이 오간 인사비리가 드러나기도 했다. 주공의 파행 인사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주공은 46년의 역사를 지닌 대표적인 공기업 중의 하나다. 그렇지만 그동안 사장이 구속된 적도 있고, 구설에 오르는 일이 잦았다. 이번 신입사원 채용자료 폐기 사건도 세간의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투명한 경영이 중요한 공기업으로서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셈이다. 주공의 새 경영진은 이번 의혹을 하루빨리 낱낱이 밝혀내 주공이 ‘신(神)의 직장’이 아닌 국민의 사랑을 받는 기업으로 거듭나도록 해야 한다.

남경현 사회부 bibul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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