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허문명]公務여행

  • 입력 2008년 6월 20일 03시 01분


올해 2월 알프레트 구젠바우어 오스트리아 총리가 휴가 때 이용한 항공기 좌석을 공짜로 업그레이드한 사실이 알려져 망신을 당했다. 이코노미석을 예약하고는 비즈니스석을 이용한 것이다. 항공사에 압력을 넣었느냐, 일종의 뇌물 아니냐, 공무 해외출장으로 모은 마일리지를 사적으로 쓴 거 아니냐 등등 언론의 집요한 추궁이 이어졌다. 총리는 “기내에서 물과 차만 마셨다. 비즈니스석에 따라오는 어떤 혜택도 받지 않았다”고 구차하게 변명하다가 비난을 더 샀다. 그는 말썽이 난 후에 이코노미석과 비즈니스석의 항공료 차액을 항공사에 추가 납부했다.

▷2002년 독일 녹색당 국회의원 쳄 외츠데미어 씨는 공무로 해외를 다녀서 쌓인 마일리지로 공짜 항공권을 얻어 애인과 여행을 다녀온 게 발각돼 의원직을 내놓았다. 공무원이 공사(公私)를 엄격하게 구분하고 국민 세금을 아껴 쓰는 것도 선진국의 지표라고 할 만하다. 감사원 감사결과를 보면 우리나라는 아직 멀었다. 공무원들이 출장 목적과 관련이 없는 엉뚱한 곳을 들르기 일쑤이고 산하기관에 여행 경비를 대라고 압력을 넣는 일도 있다.

▷허위로 국내 출장서류를 만들어 해외 관광을 다녀온 경우도, 국제회의에 간다며 유학생인 아들을 만나는 일정을 끼워 넣은 공무원도 있다. 업무가 특정되지 않은 출장도 많았다. 지난 3년간 공무원과 공공기관 소속 임직원 25만7000여 명이 ‘공무’로 해외에 나가 쓴 돈이 1조 원에 이르지만 ‘국민을 위한’ 공(公)의 부분은 과연 얼마나 될까. 지난달 울산 동구의회 의원들의 유럽 연수에 자비를 들여 따라나서 8일간 감시했던 이 지역 주민회는 ‘연수가 아닌 외유였다’고 결론을 내리고 경비 전액을 반환하라고 요구했다.

▷공무원 청렴도 세계 1위의 나라 핀란드에는 ‘공무원에게 따뜻한 맥주와 찬 샌드위치를 주는 건 괜찮지만 그 반대는 위험하다’는 격언이 있다. ‘따뜻한’ 맥주와 ‘차가운’ 샌드위치는 누구나 싫어한다. 결국 아무것도 주지 말라는 얘기다. 이 나라에서는 공직자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주는 것도 뇌물이 된다. 국민 세금을 자기 돈 이상으로 아끼는 청렴한 공무원들이 ‘국가경쟁력 1위,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를 만든 힘의 중요한 원천이다.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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