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낙인의 법과 사회]포털의 월권, 法개입 자초한다

  • 입력 2008년 6월 17일 03시 04분


인간은 보고 듣고 말하려는 원초적 본능을 갖고 있다. 언론매체는 그 본능을 충족시켜 주는 정보 제공의 젖줄이다. 구전(口傳)되던 정보는 신문이라는 활자매체를 통해서 파급력을 확대해 왔다. 라디오와 텔레비전 같은 시청각매체는 언어와 영상을 복합적으로 전달해 더욱 위력적이다. 최근에는 인터넷 통신이 전통적인 언론매체를 급속하게 대체해 나간다.

종래 통신은 언론매체가 아니었다. 하지만 정보통신 과학기술의 발전은 통신과 언론매체의 구획을 무너뜨리고 있다. 인터넷 신문과 방송은 이제 우리 일상생활에 자리 잡고 있다. 기존의 신문이나 방송도 인터넷매체를 겸한다. 특히 인터넷신문이 동영상 서비스를 확대하면서 방송과 통신으로 진화한다.

독립된 인터넷매체의 활동도 눈부시다. 공직선거법에서 인터넷매체에 대한 규제를 시작한 이래 ‘신문 등의 자유와 기능 보장에 관한 법률’에서는 새로운 유형의 일간신문으로서 독자적인 기사 생산을 하는 인터넷신문을 수용하고 있다. 날로 영향력이 증대하는 인터넷매체에 대한 최소한의 법적 규제 필요성에 입각한 선택이다. 하지만 가장 첨단적인 통신매체인 인터넷신문을 가장 고전적인 언론법제인 신문법에 포섭한 것은 체계 정합성이 떨어진다.

젊은 층으로 내려갈수록 신문이나 방송보다는 인터넷 포털사이트가 제공하는 정보에 대한 의존도가 훨씬 높다. 자발성, 개방성, 쌍방향성에 기초한 손수제작물(UCC)과 웹 2.0이 포털을 매개로 폭발적으로 발전한다. 하지만 포털은 언론법상의 매체가 아니므로 가상공간에서 충실한 중개자 역할을 하는 데 그쳐야 한다. 그런데 포털이 자의적으로 편집권을 행사할 뿐 아니라 직접적인 여론 형성에 나섬으로써 정보의 흐름을 왜곡하는 화를 자초하고 있다.

최근 촛불정국의 와중에서 미디어다음이 개설한 ‘아고라’라는 토론방은 불꽃의 심지 역할을 구가한다. 아고라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에서 시민들의 경제와 예술 활동이 이루어지던 공공의 광장이다. 종교와 정치의 중심지인 아크로폴리스와는 구별된다. 촛불집회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의 규제를 회피해 가는 촛불문화제로 진화하면서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에서 펼쳐진 비정치적 활동에 비견된다.

근대 시민혁명 이래 정립된 입헌주의는 대의민주주의에 기초한다. 대의민주주의가 갖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직접민주주의의 요소를 가미한 반대표(semi-representative) 제도가 자리 잡았다. 장 자크 루소가 주창한 직접민주주의의 이상이 헌법상 제도로 부활한 셈이다. 하지만 제도화된 직접민주주의는 특정한 국정 어젠다에 국민투표(referendum)의 형식을 빌린 예외적이고 제한적인 국민 참여라는 한계를 안고 있다. 모든 시민이 국정에 두루 참여하는 고대 그리스의 직접민주주의와는 그 궤를 달리한다. 최근에 인터넷을 통한 시민 참여가 활성화하면서 고대 그리스의 직접민주주의는 제도화되지 않은 디지털민주주의로 부활하고 있다.

하지만 실체가 가려진 채 전개되는 인터넷광장을 악용해서는 안 된다. 가상의 공간에서 폭력, 외설, 명예훼손, 사생활 침해, 청소년 유해물은 근절돼야 한다. 실체적 진실에 반하는 유언비어의 확대 재생산은 사회적 혼란을 부추긴다. 인터넷 실명제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언론매체도 아니면서 언론매체 이상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포털의 역할과 기능의 재정립은 이 시대의 과제다. 인터넷의 바다는 규제하기도 힘들지만, 그렇다고 자율규제에 맡겨두기에는 불안하기 그지없다. 부실한 자기 정화(淨化)는 결국 법적 개입을 자초하게 될 것이다.

성낙인 서울대 교수·헌법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