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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5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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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언급했지만, 흑인 민주당 경선후보였던 제시 잭슨 목사도 1984년과 1988년 연거푸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에서 승리했음에도 꿈을 못 이루지 않았던가. 과연 민주당이 흑인 대통령후보를 뽑는다는 사건이 가능할 것인가….’
이어 2월 12일에는 워싱턴DC, 버지니아, 메릴랜드 주에서 동시에 ‘포토맥 프라이머리’가 치러졌다. 영하 7도의 칼바람을 맞으며 오바마 후보의 연설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생각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변화와 희망을 역설하는 오바마 후보의 연설은 ‘전류가 흐른다’는 표현이 실감날 정도로 감동적이었지만 의구심을 떨쳐 낼 만큼 강력하지는 않았다.
다시 석 달이 흐르는 동안 텍사스와 펜실베이니아 주 프라이머리를 추가로 현장 취재했다. 공교롭게도 모두 오바마 후보가 패배한 곳이었으나 현장에서 느낀 그의 힘은 이미 거부할 수 없는 것처럼 생각됐다. 실제로 오바마 후보의 대세론은 현실이 됐다.
미 헌정 220여 년 만에 흑인이 처음 주요 정당의 대선후보로 선출된다는, 얼핏 불가능해 보였던 일을 현실로 만들고 있는 요인은 과연 무엇일까.
순전히 제도적인 면으로만 보면 미국의 독특한 코커스(당원대회)제도에 힘입은 바가 크다. 50개 주 가운데 15개 주에서 실시된 코커스는 해당 정당의 당원들만이 참가하며 토론을 통해 상대방 지지자를 설득할 수 있어 열성 지지자가 많은 오바마 후보에게 유리했다.
실제로 오바마 후보는 15개 주 중 13곳의 코커스를 승리로 이끄는 ‘괴력’을 발휘했다. 코커스에서 생긴 격차가 현재 등록대의원의 격차에 그대로 반영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선 스케줄도 오바마 후보를 도왔다. 3월 4일 ‘제2의 슈퍼화요일’에서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텍사스와 오하이오 주에서 승리를 거두며 기세를 올렸지만 오바마 후보는 그 직후 열린 와이오밍 코커스와 미시시피 프라이머리를 승리로 이끌며 찬물을 끼얹을 수 있었다.
종반전에 들어선 뒤 가장 많은 대의원이 배정된 펜실베이니아 프라이머리에서 힐러리 후보가 승리를 거뒀지만 2주 후 오바마 후보는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서 압승해 ‘멍군’을 할 수 있었다.
언론도 오바마 후보에게 힘을 실어줬다. 1월 논설실 명의로 힐러리 후보 공식 지지를 선언했던 진보진영의 대표 격인 뉴욕타임스도, 또 다른 유력지인 워싱턴포스트도 승패가 분명해진 지금에 와서는 힐러리 후보의 ‘결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민주주의의 작동원리란 대립하는 가치와 이념을 대표하는 여러 세력이 다수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공정한 규칙 속에 경쟁하는 것이며, 언론 역시 자신이 존중하는 가치의 편에 서서 시대정신의 흐름에 과감하게 동참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제 오바마 후보가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로 공식 지명되면 이는 대의제 정당정치의 스승을 자처하는 유럽에서도 상상하기 힘들었던 ‘정치혁명’으로 기록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과연 오바마 후보가 본선에서도 이길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여전히 떨쳐지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어쩌면 여전히 보수적인 미국 사회 내에서 그의 피부색이 가진 한계가 먼저 염려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 같은 기자의 걱정이 내년 1월 제44대 미국 대통령이 취임 연설을 하는 순간엔 완전히 사라질 수 있을지 관심을 갖고 지켜볼 생각이다.
하태원 워싱턴 특파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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