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서영아]美日밀월시대 저무는가

  • 입력 2007년 11월 15일 03시 02분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일본 총리의 별장이었던 도쿄 ‘히노데(日の出) 산장’이 11일 ‘론-야스 기념관’으로 모습을 바꿔 일반에 공개됐다.

2만5000m² 대지에 옛 민가와 다실, 서원 등이 들어선 산장은 1983년 11월 나카소네 당시 일본 총리와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이 ‘론-야스(로널드-야스히로) 정상회담’을 한 현장. 나카소네 전 총리는 지난해 11월 “여생이 얼마 안 남았다”며 이 산장을 지방자치단체에 기증했다.

24년 전 회담에서는 나카소네 전 총리가 직접 차를 달여 내며 미일 간 밀월을 연출했다. 이후 두 정상은 “미국과 일본은 운명공동체”라며 방위 안보 분야에서 긴밀한 협력 관계를 쌓아 나갔다.

이 같은 밀월 관계는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 사이에서도 눈에 띄었다. 9·11테러를 당한 부시 대통령에게 가장 먼저 “무조건 돕겠다”는 메시지를 보낸 사람이 고이즈미였다. 이후 두 정상은 잦은 정상회담을 통해 쌓은 우정을 바탕으로 이라크 사태와 북핵 문제 등에서 공동보조를 취했다.

부시 대통령도 “내 친구 고이즈미를 곤란하게 하지 말라”며 일본 정부에 장애가 될 만한 요소들을 막아 주곤 했다. 이러는 사이 미일 간에는 미사일방어(MD) 체제 공동 개발과 미군기지 재편 협상 등이 이뤄졌다.

거슬러 올라가면 양국 간 밀월의 뿌리는 요시다 시게루(吉田茂·1878∼1967) 전 총리에 이른다. 요시다는 전후 일본이 연합군총사령부(GHQ) 치하에 있던 거의 전 기간에 걸쳐 외상 또는 총리를 맡아 일본 외교안보정책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는 미국의 도움으로 샌프란시스코 강화회의에서 큰 배상 없이 연합국과의 강화를 이끌어 냈고 같은 날 미일안보조약을 체결했다. 이 강화회의에서 한국이 배제된 것도 그의 로비에 따른 것이었음이 훗날 밝혀졌다.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에 들어선 일본은 안전보장비용을 최대한 줄이고 ‘비무장 경제우선 전략’을 택해 번영할 수 있었다.

최근 일본에서는 이 같은 미일 간의 밀월 관계에 틈새 바람이 분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총리와 부시 대통령의 16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난제가 워낙 많기 때문이다.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일본의 지원을 상징하던 해상자위대의 인도양 급유 문제는 야당의 반대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미국이 이를 계기로 세계 전략에서 일본의 역할에 대한 기대를 접으려 한다는 분석마저 나오지만 손써 볼 도리가 없다.

무엇보다 일본이 걱정하는 것은 미국의 대북 노선 변화다. 일본인 납치 문제의 해결 없이 미국이 덜컥 북한의 테러지원국 지정을 해제할 경우 양국 관계가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는 염려다.

미국 정부는 당초 연말 테러지원국 해제를 목표로 11월 중순 의회에 이를 통지하려 했으나 일본 외교관들이 뛰어 간신히 후쿠다 총리의 방미 뒤로 미루게 했다. 5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의 방미에 앞서 미 하원의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채택을 미루도록 ‘조정’했던 사례와 비슷하다.

후쿠다 총리는 ‘론-야스 기념관’ 개소식 행사에서 나카소네 전 총리가 한 조언처럼 ‘오른손은 미국, 왼손은 아시아’를 조화롭게 구사할 수 있을까. 현재 미일 관계에 먹구름이 잔뜩 낀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정권 말기의 부시 대통령과 정권의 앞날을 내다볼 수 없는 후쿠다 총리가 확고한 권력의 반석 위에 서 있지 못한 때문은 아닐까. 이래저래 미일 관계는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것이 현실이다.

서영아 도쿄 특파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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