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박찬모]제발 대학 좀 내버려 두시오

  • 입력 2007년 7월 9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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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신입생 선발을 놓고 대학과 교육인적자원부 사이에 불거진 사태를 보면서 교육자의 한 사람으로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어쩌다가 국내 고등교육계가 이 지경이 됐는지 참으로 한심하고 부끄럽다.

교육부 ‘내신 소모전’ 참담

결론부터 말해서 대학이 국제경쟁에서 살아남자면 청와대는 교육부가 소신 있게 정책을 세우고 집행하도록 내버려 둬야 하고 교육부는 대학이 소신껏 훌륭한 학생을 선발하도록 자율권을 최대한으로 보장해야 한다.

정부가 정책을 세울 때는 과학적 방법을 활용해 부작용을 미리 검토해야 한다. 내신 성적 50%를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방침이 과연 국제경쟁력 있는 인력을 키울 수 있는 좋은 방법인지, 기회균등 할당제가 지방대학에 미치는 영향이 어떠할지를 시뮬레이션이라도 해 봤는지 의심스럽다. 실력이 미치지 못하면서 대학에 입학했을 때 그들이 받을 고통과 좌절은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걱정이 앞선다.

포스텍(포항공대)은 설립 당시부터 학생에게 주는 장학금 혜택이 컸기 때문에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이 많이 몰려왔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공부를 잘해서 입학했기에 다른 학생과 경쟁하면서 학업을 마칠 수 있었다. 기회균등은 고등학교에서 공부를 잘하도록 도와서 자력으로 대학에 입학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방향이라야 한다.

어두운 곳이 있으면 밝은 곳이 있기 마련이다. 교육부가 고집하는 입시정책에 비해 최근 과학기술부가 발표한 정책은 매우 대조적이며 환영할 만하다. 과기부는 대학의 연구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 간접연구비 산정 및 대응자금과 관련된 제도를 개선했다.

첫째, 연구비 지급 시 계상하는 간접경비는 원가계산을 토대로 대학별로 차등 산출토록 하고 간접경비 비율을 확대했다. 종전의 일괄적인 정책적 보상방식에서 벗어나 실소요 원가보상 방식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연구비 상위 수준의 대학은 간접경비 상한선이 대부분 20% 수준으로 책정됐다. 과기부는 제도 개선을 통해 연구비 사용의 합리성을 확보하고 대학의 연구 환경을 선진화함으로써 연구의 효율이 향상될 것으로 예상한다.

원가계상에 의한 간접경비 보상 방식은 미국식이다. 간접연구비율 산출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제고하기 위해 미국 예산사무국(OMB)은 ‘Circular A-21’ 지침을 제정해 기준을 만들었다. 미국 주요 대학의 간접연구비율은 40∼65% 수준이다. 일본은 2001년부터 대학연구비 지급 시 직접경비와 별도로 30%의 간접경비를 인정하는 등 간접경비비율을 상향 조정했다.

한국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금년부터 대학의 원가보상방식에 의한 간접경비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대학 연구 인프라 투자촉진 등 연구 환경에 획기적 개선의 기본적인 토대를 마련했다.

추가적으로 간접경비 지급 방식에 대한 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일본 수준의 간접경비 비율로 상향 조정해야 한다. 연구의 간접비와 직접비를 구분하되 연구책임자는 연구 직접비만을 편성한 뒤 제출하고 연구관리 전문기관이 과제 선정 후 대학별 간접경비비율을 적용한 뒤 매 분기에 대학에 일괄 지급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

둘째, 과기부는 대학 연구자의 부담을 경감해 주기 위해 일부 기초연구사업은 대응자금(Matching Fund)제도를 금년부터 폐지했다. 대응자금은 그동안 산학협력연구의 촉진, 민간 부분의 투자유도 등 연구예산 증가에 기여했으나 대학에 부담이 생기고 산업체는 준조세 성격으로 인식해 산업계와 관련이 적은 기초연구분야 연구자의 불만을 사는 등 개선요구 의견이 많았다.

경쟁력 높이는 게 최상의 정책

이에 따라 SRC/ERC, NCRC, MRC 등 3개 기초연구사업의 대응자금제도가 2007년 사업부터 폐지됐다. 기초과학분야의 성격상 산업체의 대응자금 확보가 쉽지 않고 대학의 대응자금 확보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을 감안하면 획기적인 지원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교육부 산업자원부 정보통신부 보건복지부 등 다른 부처도 간접경비비율을 올리고 기초연구분야 사업은 대응자금을 폐지해 대학 경쟁력 제고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정책 방향이 정립되기를 기대한다.

박찬모 포스텍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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