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허승호]경제의 정치화

  • 입력 2007년 7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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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당신에게 ‘오늘 왜 비가 오느냐’고 묻는다면 당신은 “기상청에 물어보자”고 할 것이다. 몸에 병이 나면 사람들은 의사를 찾아간다. 하지만 ‘집값을 안정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고 물으면 “투기를 잡아야 한다”고 자신 있게 답하는 사람이 꽤 많다. “경제학 책을 펴 봐야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노무현 대통령부터 그런 성향인 것 같다. 지난달 신용카드 수수료를 내려 달라는 영세사업자들의 건의를 받은 노 대통령은 즉석에서 “인하 방안을 마련하라. 금융전문가의 사고방식으로는 못 풀고, 정치하는 방식으로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 문제의 정치화’로 대학과 공교육을 흔들어 놓더니 이번에는 카드 수수료라는 ‘경제(가격) 문제’를 정치토론으로 결론 내겠다는 것인가. 합리적인 경제관료였던 전직 장관 C 씨는 최근 몇몇 언론인에게 “시장원리에 반(反)하는 정책은 결국 다 실패했다. 그런데도 반시장적 정책이 이어지고 있다”며 딱해했다.

▷금융감독원이 13일로 예정된 카드 수수료 원가 산정 공청회를 돌연 연기했다. 그러자 업계에서는 ‘금감원이 금융연구원에 연구용역을 줬으나 대통령 지시에 안 맞는 결과가 나오자 공청회를 연기한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금융연구원에서도 “영세사업자일수록 원가가 높을 수밖에 없다. 수수료 인하가 쉽지 않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공청회 연기에 대한 업계의 우려가 억측만은 아닌 듯하다. 원가야 어찌됐건 신용카드 업계는 벌써 수수료 인하를 기정사실화하면서 얼마를 내려야 할지 고민하는 분위기다. 서슬 퍼런 대통령을 의식한 정치적 판단이라 하겠다.

▷노 대통령은 지난달 주가의 고공행진을 경계하면서 “개인이 어디서 돈을 빌려서 투자하는 것인지 체계적인 조사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그러자 통화 당국이 일제히 돈줄 죄기에 나섰다. 이번에 카드 수수료 문제가 불거지자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이 “정치논리가 아닌 경제논리로 풀 것”이라며 봉합에 나섰다. ‘대통령은 저지르고, 관계 당국자는 수습하기’가 교육 문제, 경제 문제 할 것 없이 이 정부의 패턴 같다.

허승호 논설위원 tige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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